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4장] 김개남(309회)

윤태민 기자 2026. 1. 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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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이 송경찬 훈련대장에게 단호히 답했다.

"독자적인 전선을 꾸미는 것이오. 전봉준 동도대장은 금구, 원평에 대도소를 설치하여 전라우도를 호령하고, 나는 남원에 대도소를 설치하여 순창, 진안, 장수, 용담, 순천, 낙안, 고흥 등 전라좌도를 호령할 것이오. 휘하에는 김인배를 두어 순천에 영호도회소(嶺湖都會所)를 설치하도록 할 것이오. 그와 함께 하동, 진주, 함안 등 영남의 서남부지방까지 그 세를 떨치도록 할 것이오. 내 뜻이 이러하니 전봉준 대장에게 전하시오. 굳이 말하자면 전봉준 군사와 경쟁을 해도 좋소."

그는 자신만만하였다.

"이 말을 전하겠소."

송경찬은 그 길로 전봉준 진영으로 돌아갔다.

김개남은 군사의 세를 모아 6월 중순 남원성을 공격하자 관아 벼슬아치들이 모두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

"일시 피하자."

남원부사 윤병관은 관아의 관직자들에게 이렇게 명하고 그가 먼저 몸을 피했다. 그는 성난 김개남군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관군더러 방어하지 말고 피하라고 명한 것이다. 김개남군은 부청(府廳)의 무기고를 털어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였다.

"미곡 창고도 접수하여 털어라."

과연 창고에는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수천 석의 쌀과 수천 필의 면포와 비단, 어부들로부터 거둬들인 어포(魚脯)들이 수천 짝 쌓여 있었다. 이것들을 모두 압수하고, 여세를 몰아 토호의 민가에 들어가 방화와 약탈을 저질렀다. 벼슬아치들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피하며 남원성은 무법천지가 된 것이다.

군기를 잡고 있는 김개남은 군사들의 이런 행위들을 묵인하였다. 전란의 격화 과정에서 관아와 관직자들의 무기력과 민중 주도에 따른 권력 공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관아 벼슬아치들이 한결같이 도망간 것은 관직자들이 얼마나 민란의 위협에 취약한가를 결과로써 보여주고, 사회 혼란과 권력 공백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김개남이 두려운 대상이라는 것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질서를 잡아나가면 된다고 믿었다.

김개남은 남원성에 전라좌도대도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추진했다. 남원성 점령은 폐정개혁 추진, 농민군 조직 강화, 남원대회 개최 등 현안들을 처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변곡점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부청에 오른 김개남이 남원부사의 자리에 가 앉더니 모인 장수들을 향해 일갈했다.

"남원성 이곳이 과연 춘향골이렸다?"

"그렇습니다. 미색으로 호강하는 곳이지요."

"미색 있는 여자라면 관비는 물론 유부녀건 처녀건 주막의 여인이건 닥치는 대로 손을 대고 주색에 빠진다는 얘기인고?"

"그렇습니다. 바로 남원부사 윤병관이란 자가 그렇게 호사를 누렸던 곳이오. 부사 대대로 그러한 것이니 새삼 그만을 나무랄 수는 없지요. 이것을 개남 장군이 누리게 되었소이다. 축수드립니다. 하하하."

그러자 김개남이 벼락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남원 춘향골이라고 해서 나까지 그런 음주가무(飮酒歌舞)에 취하란 말이더냐. 그런 못된 기행(奇行)을 바로잡고자 우리가 일어선 것이 아니더냐. 너의 썩은 정신이 과연 부장(副將)이라고 할 수 있나?"

개박살이 난 부장이 꼬리를 내리는 때, 성문 밖을 지키던 초소장(哨所長)이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장군, 운봉의 박봉양이 민보군을 이끌고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 민보군 대장 박봉양?"

김개남은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남원성은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민보군, 일본군 간에 맞부딪는 치얄힌 격전지가 되는 서곡을 알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