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 들으며 마음속 잡음 털어내세요”

조은별 기자 2026. 1.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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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시 삼양해수욕장. 제주 자연의 소리로 관광 프로그램을 짠 이용원 사운드벙커 대표(41)다.

지난해에도 2000명 넘는 이들이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겠다며 제주를 찾았다.

이곳을 방문해 1시간30분가량 여러 자연물이 내는 소리에 몰입하며 마음속 잡음을 잊는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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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52) ‘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 <제주 서귀포>
7년간 환경 분야 일하며 자연에 관심
올레길 오르다 소리 중심 관광 착안
빗소리·파도 소리 ‘자장가 앱’서 첫선
‘사운드워킹’ 기획…작년 2천명 참여
수익금 마을·환경단체에 기부 ‘상생’
제주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에서 파도 소리를 녹음하는 이용원 사운드벙커 대표. 이 대표는 제주 곳곳의 소리로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가치를 전해왔다. 제주=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쏴아아…’

제주 제주시 삼양해수욕장. 바람·바다·모래가 삼박자를 이룬 파도 소리가 명징하고 경쾌하다. 규칙적으로 해변을 삼키고 토해내며 매끈하게 연주를 이어간다. 해변가 한쪽에 녹음기를 든 사람이 이 합주곡을 채집하고 있다. 제주 자연의 소리로 관광 프로그램을 짠 이용원 사운드벙커 대표(41)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깜깜한 세상이 푸른 물보라로 가득 차는 듯하죠.”

녹음에 집중하며 겨울 바다를 고스란히 느끼는 이 대표. 그는 2016년부터 녹음기와 헤드셋을 들고 제주 곳곳을 누벼왔다. 2021년엔 소리가 지닌 힘을 널리 알리고 싶어 소리 관광 프로그램 ‘사운드워킹’을 기획했다. 소형 녹음기를 들고 귀를 기울여보는 체험으로 깊은 자연 속을 탐색한다. 생소한 관광 방식인 만큼 2년 넘게 꼼꼼히 준비한 후 2024년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많은 이가 공감해줄까 하는 걱정도 잠시, 그해 참여한 인원은 2700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도 2000명 넘는 이들이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겠다며 제주를 찾았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운드워킹 코스를 개발해달라는 문의도 쏟아졌다. 그는 어쩌다 ‘소리 전도사’가 된 걸까.

“환경 교육 분야에서 일하다 한계를 느꼈거든요. 환경보호를 말로 설명하는 게 와 닿을까 싶었어요. 자연과 직접 만나야겠다는 열망이 점점 커졌죠.”

7년간 환경보전협회에서 일하던 이 대표는 과감하게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제주 서귀포로 향했다. 처음엔 막막했단다. 아름다운 경치를 찾긴 했는데 이를 전달할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방황하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건 제주올레 탐사 업무였다. 올레길 27곳을 유지·보수하며 그는 소리와 사랑에 빠졌다. 이 대표는 “풍광을 감상하다보니 꽃비 내리는 소리나 새의 지저귐이 마음에 새겨졌다”며 “그러다 소리를 중심에 둔 관광을 떠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소리 관광에 도전한 건 아니다. 아무래도 소리를 체험한다는 개념이 낯설던 때라 먼저 그 가치를 알릴 방법을 찾았다. 시작은 자장가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숙면에 도움 되는 제주의 빗소리, 파도 소리 같은 백색소음을 녹음해 올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20년 첫선을 보였는데 176개국에서 앱을 사용했고 이용자수는 3만명이 넘었다. 소리가 몸·마음에 주는 평안함을 확인하곤 소액 투자자에게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자연 소리를 담은 녹음본과 그 경치를 설명하는 편지를 함께 보내는 방식으로 목표액보다 3배 이상을 모금해 인기를 실감했다.

“가치를 확인했으니 다음 단계는 사운드워킹이었죠. 알맞은 장소를 찾는데 화순곶자왈이 소음도 적고 계절마다 깃드는 소리도 참 다채롭더라고요.”

신비한 자연의 소리로 가득한 제주 서귀포시 화순곶자왈. 사운드벙커

사운드워킹의 주무대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화순곶자왈이다. 이곳을 방문해 1시간30분가량 여러 자연물이 내는 소리에 몰입하며 마음속 잡음을 잊는 시간을 보낸다. 타지에서 온 여행객은 물론 주민도 참여한다. “매번 걷던 길인데 다른 세상 같다”는 후기를 남긴 이도 있다고.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모인 사운드워킹 참가자들. 사운드벙커

사운드벙커는 인근 마을과도 상생한다. 화순곶자왈 사운드워킹을 찾은 체험객수에 비례한 금액을 마을에 기부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해에 1500명 가까이 화순곶자왈 체험에 나선다”며 “재작년과 작년 모두 15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여러 환경단체에 매출의 1%를 꾸준히 기부해왔다.

제주 학교 선생님과 학생에게도 도움을 준다. 사운드벙커는 2024년엔 서귀포시 하례초등학교·도순초등학교, 2025년엔 안덕초등학교, 제주시 제주중앙중학교를 찾아 환경을 주제로 한 교육을 열었다. 교실에서 강의한 뒤 화순곶자왈을 따라 걸었다. 이 대표는 “한 중학생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며 “사운드워킹은 환경보전을 가장 우아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한마디에 그동안 고생한 나날을 다 보상받은 것 같더라”고 미소 지었다.

마을에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도 세운다. 기업 이름처럼 소리 자료를 보관하는 ‘사운드벙커’를 짓겠다는 것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관리·운영을 맡을 주민을 채용할 예정이다. 소리 관광을 창출해 제주를 찾는 발걸음을 늘려온 이 대표는 후배 로컬크리에이터를 향한 조언도 건넨다.

“자신의 감각을 믿으세요. 바람과 파도 소리가 주민에겐 일상이었겠지만 도시에 살던 저에겐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거든요. 지금이라도 지역에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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