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홀린 ‘김장조끼’와 ‘K교복’

지난 4일 찾은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의류 골목. 영하의 날씨에도 김장 조끼를 찾는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매대 가장 앞줄을 차지한 형형색색의 조끼 앞에서 상인 정희성(72)씨는 “행사가로 모셔요”를 외치며 호객에 한창이었다. 정 씨는 “구매 손님 10명 중 3명은 외국인인데, 절반 이상은 이미 이게 유행이라는 걸 알고 온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김장 조끼를 두고 “실용적인데 독특한 미감이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필리핀 관광객 라이슨 파라스(40)씨는 “가격이 저렴하고 따뜻해 선물용으로 최고”라며 색깔별로 4벌을 구매했고, 일본인 사키 히가시(37)씨는 화려한 꽃무늬를 보며 “오히려 귀엽다”고 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을 거니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복’들이 외국인들의 필수 쇼핑 리스트에 올랐다. ‘촌스러움’의 대명사였던 꽃무늬 김장조끼가 외국인들에게 ‘아줌마 시크(Ajumma Chic) 패션’으로 추앙받는가 하면, 놀이동산에서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교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김장조끼’의 신분 상승이다. 한국인에게는 겨울철 김장을 할 때 입는 작업복이나 시골 할머니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이 옷이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할머니 조끼(K-Granny Vest)’ ‘김치 할머니 스타일(Kimchi Grandma Style)’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외국인들은 원색 컬러와 과감한 꽃무늬 패턴을 촌스러움이 아닌 “한국만의 독특하고 힙한 레트로 감성”이라고 했다.

이러한 반전에는 K콘텐츠의 힘이 컸다. 제니, 카리나 등 글로벌 K팝 스타들이 조끼를 착용한 모습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할머니 룩’이 트렌디한 패션으로 탈바꿈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는 ‘김치조끼(#Kimchivest)’ 해시태그를 단 인증샷이 줄을 잇고, 아마존(Amazon)과 이베이(eBay) 등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도 인기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잠실 롯데월드 인근은 ‘K하이틴’ 체험을 하려는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한국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보며 한국 교복에 대한 로망을 키워온 외국인들이 대여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롯데월드 인근 한 교복 대여점에서 만난 호주인 자매 사막다 쉬럼(21)과 트시다 쉬럼(17)은 “한국에서는 교복을 입고 놀이공원에 가는 게 트렌드라고 들었다”며 옷을 골랐다. 이들은 “호주 교복과 달리 한국 교복은 무채색의 깔끔한 스타일이라 예쁘다”며 만족해했다. 대여점 업주는 “최근에는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서구권 손님도 크게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 ‘문화 체험 놀이’로 분석했다. 한국의 전통뿐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감이 묻어나는 김장 조끼나 미디어 속 판타지인 교복 등을 직접 입고 즐기며 인증샷을 남기는 과정 자체가 외국인에게는 새로운 ‘K관광’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의 일상복들을 입는 것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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