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증권사는 ‘남는 장사’… ‘좀비 스팩’ 난립에도 상장 줄이어

연선옥 기자 2026. 1. 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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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하나·KB증권, 상장된 스팩만 7~9개

상장한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이 합병 회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데도 추가 스팩을 상장하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스팩 적체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스팩 남발 상장에 따른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상장된 스팩은 25건이었다. 연간 40개 안팎의 스팩이 상장했던 2022~2024년과 비교하면 규모 자체는 줄어든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3년 상장한 스팩이 비상장 기업과 합병에 성공한 사례가 연간 17개 안팎인 상황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합병 실패나 지연으로 수십여개의 스팩이 시장에 머물고 있음에도 추가 상장이 이어지면서, 나가는 곳보다 들어오는 곳이 많은 병목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증권사가 비상장사를 인수·합병할 목적으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인 스팩은 3년 동안 유망한 비상장 기업을 찾아 합병해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스팩은 해산돼 상장 폐지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 모습.//뉴스1

한 증권사가 7~9개 스팩을 상장해 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하나증권이 코스닥 시장에 올린 스팩은 현재 8개에 달한다. 지난 2023년 상장한 25호에서 27호 스팩이 잇따라 합병에 실패해 청산됐고, 같은 해 상장한 29호 역시 합병 실패로 조만간 해산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증권은 30~35호 스팩을 연이어 상장시킨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36호까지 추가로 올렸다.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스팩은 각각 9개, 7개다. 2023~2024년 상장된 스팩 중 여전히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한 스팩이 쌓여있지만, 지난해에도 스팩을 추가로 상장했다. 신한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의 스팩도 각각 6개 상장돼 있다.

통상 증권사들이 2~3개 스팩을 상장해 놓고 합병 대상 기업을 모색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증권사의 상장 스팩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평가다. 최근 스팩 합병 추이를 보면 이들 스팩은 합병에 성공하는 경우보다 청산되는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증권사는 다수의 스팩 상장이 상장 주관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스팩을 통한 상장은 직(直)상장보다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편해 상장 스팩을 가진 증권사 입장에선 비상장사에 합병 상장을 유인책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다양한 규모의 비상장사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다른 스팩 수개를 미리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 증권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스팩 합병이 무산돼도 증권사가 짊어질 리스크가 크지 않은 구조적 허점과 IB 조직 내 컨트롤타워 부재가 무분별한 상장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증권사의 스팩 투자 단가는 일반 투자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스팩 공모가가 2000원이라면, 상장 전 설립 당시 증권사가 취득한 스팩 주식은 1000원이다. 스팩 설립과 상장 과정에서 증권사가 비용을 부담하고 청산이 이뤄질 경우 원금을 상환받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해 정부가 스팩을 설립하는 증권사에 인센티브를 준 덕분이다.

스팩은 합병에 실패해도 공모가가 보장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에겐 안전한 투자처로 분류된다. 거꾸로 말하면 스팩 합병에 실패하면 그만큼의 비용을 증권사가 부담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증권사가 스팩 상장 당시 얻는 인수·자문 수수료를 고려하면 청산 비용은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그래픽=손민균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는 스팩을 상장하는 순간 인수·자문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스팩 합병이 실패하더라도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지 않다”라며 “관련 인력과 조직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지만, 스팩 담당 조직이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IB 부서에서 직상장과 스팩 운영을 함께 관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추가 비용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IB 부서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고 각 부서별 경쟁이 이뤄지는 구조 역시 과도한 스팩 상장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각 증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일부 증권사의 경우 개별 IB 부서별로 실적을 평가하고 스팩을 따로 관리하다보니 기존 스팩이 있어도 추가 스팩을 올린다”며 “내 부서에서 올린 스팩에 붙일 비상장사를 찾아야 내 실적이 되기 때문에 스팩을 많이 올리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난립하는 스팩이 ‘단타’를 노리는 투자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최근 신규 스팩이 주식시장에 등장할 때마다 주가가 이상 급등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스팩 상장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증권사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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