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 ‘홀스파워’의 진짜 의미 [김정민의 영어 너머 원더랜드]

매년 연말연초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김난도 교수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는 2026년 트렌드 키워드로 ‘홀스파워(Horsepower)’를 내놓았다. 흥미로운 선택이다. 우리말로는 ‘마력’, ‘HP’로 표기되는 이 단위는 산업혁명 시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단위다. 증기기관과 방적기 등이 하루가 다르게 혁신되던 시기에,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했던 ‘말의 힘’을 기준으로 “이 기계는 당신의 말 몇 마리 분량의 일을 합니다”라고 설명한 이 아이디어는 복잡한 수치를 늘어놓지 않아도 성능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매우 직관적인 발상이었다.
마력을 표시할 때 ‘HP’ 외에 ‘PS’라는 표기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주로 독일차에서 이렇게 표시되는데, ‘페어데슈테르케(Pferdestärke)’의 약자로 ‘말의 힘’을 뜻하는 독일식 마력 단위다. 독일식 출력 단위인 PS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PS는 75kgf·m/s, 즉 1초 동안 75kg을 1미터 들어 올리는 출력으로 정의된다. 300HP는 약 305PS에 해당하는 출력으로, 수치상 큰 차이는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75kg을 1미터 들어 올리는 힘? 그건 나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말만큼 힘이 센가? 말이 그렇게 힘이 약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점은 1HP가 말의 최대 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은 질주 순간 10~15HP에 해당하는 출력을 낼 수 있다. 홀스파워라는 단위는 그런 폭발적인 힘을 기준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말이 오랜 시간 꾸준히 견인할 수 있는 평균적인 출력,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힘’을 기준으로 삼은 값이다. 홀스파워는 강함의 단위라기보다, 견딤의 단위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반복할 수 있느냐다. 말과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갈라진다.
이 지점에서 교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부와 학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초등 6년은 2191일, 중등 3년은 1095일이고, 총 12년의 교육과정은 4383일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최종 목표인 입시 성적은 이 시간 동안 얼마나 꾸준히 출력을 유지해 왔는지의 결과로 나타난다.
현장에서 오래 지켜보면 아이들의 성장은 말이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출발선에서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몇 걸음 지나면 차이가 난다. 초등 저학년 때 만들어진 공부 습관은 말의 첫 보폭이고, 고학년 때 다져진 기초 체력은 그 속도를 받아내는 다리 힘이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성적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는 갑자기 머리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이미 보폭과 다리 힘이 준비된 아이는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애써 뛰어도 가속이 쉽게 붙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는 더 빨리 치고 나가는 것보다, 한 번 붙은 속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가 성적을 가른다.
요즘 아이들을 둘러싼 학습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 즉각적인 피드백, 단기간 성과를 약속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하지만 도구가 빨라졌다고 해서 학습의 본질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생각하는 힘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언어 감각 역시 반복과 축적을 통해서만 몸에 남는다. 기술은 속도를 높여줄 수는 있어도, 학습을 대신해 달려주지는 않는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다. 빠르고 뜨거운 에너지가 강조되는 해이지만, 홀스파워라는 단어는 꾸준함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마력’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차분하다. 무엇을 얼마나 세게 하느냐보다, 무엇을 끝까지 해내느냐의 문제다. 공부도, 일도 결국은 시간을 통과한 결과만이 남는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법 같은 힘(魔力)이다. 2026년 올해 연말까지 계획한 일이 있다면 1월부터 속도를 내기보다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있는지부터 점검해보면 어떨까.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서울 강남 뺨치는 경기 이 동네…집값 급등에 전세가율 50% 아래 ‘뚝’ - 매일경제
- “한국인 머리카락을 훔치고 싶다”…해외에서 반응 오는 K헤어 - 매일경제
- “이란 가만두면 안될 거 같다”...트럼프 으름장에 하메네이 대답은 - 매일경제
- 재정폭탄 코앞인데 “선거부터”…기초연금·정년연장 개혁도 밀렸다 - 매일경제
- 미사일 대신 관세폭탄 먼저 쏜 트럼프…“이란과 거래하는 나라에 관세 25% 부과” - 매일경제
- “교실이 텅 비어간다”…올해 초등학교 입학생 30만명 붕괴 - 매일경제
- “7년 전부터 엔비디아 보유”…수익률 ‘800%’ 고백한 여가수 - 매일경제
- [단독] 부모님의 주택연금, 목돈 없이 자녀가 이어받을 길 열린다 - 매일경제
- “이젠 사람이 귀하지 않습니다”…은행, 신규채용 ‘찔끔’ 희망퇴직 ‘북적’ - 매일경제
- 적수가 없다!…‘세계 최강’ 안세영, 中 왕즈이 꺾고 말레이시아 오픈 3연패 달성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