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111) 화국지문(華國之文)

동방한학연구원장
퇴계학연구원(退溪學硏究院) 설립자 춘곡(春谷) 이동준(李東俊) 공은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시멘트를 생산해 10대 기업까지 들어갔다. 그의 7촌 아저씨인 대한학자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께서 여러 번 “선생 학문 연구하는 학술기관 하나 만들지?”라고 권유했으나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뒤 인천제철 등을 경영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 요양차 영국으로 갔다. 영국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직원이 이 회장의 여권을 들고 한참을 따져 물었다. 그다음에는 세관 직원이 또 가방을 다 열어젖히고 1시간 동안이나 짐을 다 뒤졌다.
난생처음 엄청난 모욕을 받았다. 자기 앞에 섰던 일본 사람은 조사 없이 통과시켰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공항에서 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영국 의사가 당장 “한국이 야만국이겠지요?”라고 반문했다. “아닙니다. 일본보다 훨씬 문화가 앞서고, 우리 문화를 일본에 전해주었는데요? 그런데도 일본 사람은 수월하게 통과시킵디다”라고 반박했다.
영국 의사는 “일본이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신 나라는 없지 않아요”라고 해서, 이 회장은 할 말이 없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봤다. “영국은 문명국가입니까?” 그 의사는 “세계 제일의 문명국가지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무슨 기준에서?”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회장은 “우리도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있고, 많은 저서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영국 의사는 관심이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국가의 격을 높이는 것은 바로 학문이다. 세계적인 학자 퇴계 선생이 계신데, 지금까지 내가 기업한다고 너무 등한시했다. 돌아가면 내 재산을 다 기울여 퇴계 선생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내 전력을 바치겠다”라고 다짐했다.
돌아오자마자 퇴계학연구원(退溪學硏究院)이라는 연구기관을 발족했다. 당장 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연민 선생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마침 그해가 퇴계 선생 서거 400주년 되는 해였다.
그 후 퇴계학연구원 독립 건물도 짓고, 국제퇴계학회를 설립해 대만, 일본, 유럽, 미국, 소련, 중국 등지에서 국제 퇴계학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
지금 퇴계의 학문이 주자보다 더 정심(精深)하다는 주장을 하는 두유명(杜維明) 등 여러 학자들이 있을 정도로 퇴계학이 세계화됐다. 퇴계학이 세계화되는 일은, 이 회장이 영국 공항에서 받은 충격에서 비롯됐다.
국가의 격은 단순히 국민소득의 고저에 달린 것이 아니고, 문학 학문의 수준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은 그보다 더 위에 있다.
*華 : 빛낼 화. *國 : 나라 국.
*之 : ~의 지. *文 : 글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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