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서 죽는다" vs "진료실 마비"…'응급실 뺑뺑이' 딜레마

박경담 2026. 1. 13.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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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증 지정 병원 수용, 소방청 추진
생사기로 환자, 급한 불부터 끄는 대책
의사계, 배후 진료가 중요하다고 반발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구급차가 서 있다. 연합뉴스

환자를 태운 119 구급차가 치료할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전화를 돌리며 도로를 배회하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소방당국이 이송 체계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4대 중증 환자(심근경색, 뇌졸중, 중증외상, 심정지)의 응급 상황 때에는 119 구급대가 사전 지정한 근처 병원으로 가도록 시스템을 꾸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의사계는 이런 정책이 오히려 환자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반발한다. 119 구급대, 응급실 의사 등의 목소리를 담아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병원 사전 지정은 소방청이 지난 8일 행정안전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꺼내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지금도 구급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응급실 뺑뺑이 대책 마련을 주문하자 제시한 방안이다.

지금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구급대원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상황실을 통해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는다. 병원 사전 지정이 실현되면 4대 중증 응급 환자를 태운 119 구급차는 이들을 받을 병원을 찾느라 헤매는 대신 미리 정한 가까운 병원으로 향하면 된다. 병원은 4대 중증 응급 환자에 대해선 배후 진료(응급 처치 이후 이뤄지는 전문 치료)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하기 어렵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의 응급 치료를 사실상 강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병원 사전 지정 대책이 나온 가장 큰 배경은 '골든타임(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 시간)'이다. 소방청은 생사기로에 있는 4대 중증 응급 환자가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는 게 낫다고 본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논리다. 응급 처치 후 의료진 부족 등으로 배후 진료를 할 수 없다면 다른 병원을 찾게 된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소방청은 응급실 뺑뺑이 탓에 관할 지역 내 공백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멀리 위치한 대형병원까지 환자를 이송하느라 다른 응급 상황 대처가 늦어진다는 얘기다.

서울 지역 구급대원인 김성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소방지부 구급국장은 "요즘처럼 추울 때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뇌졸중 의심 환자가 많다"며 "2차 종합병원에선 더 큰 병원을, 3차 대형병원은 2차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병원에서 뇌졸중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단기 대책, 최종 진료 기관 지원 시급"

그래픽=강준구 기자

하지만 의사계는 소방청 방안에 반발한다. 반대 이유는 소방청과 마찬가지로 골든타임이다. 의사계는 4대 중증 등 위급 환자는 배후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빨리 찾는 게 결과적으로 시간이 덜 들게 해 환자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응급 처치 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면 환자 상태가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사계는 또 응급실 수용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환자가 들어오면 안 그래도 포화 상태인 응급실이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배후 진료 가능 병원을 찾는 게 현재는 구급대원 몫이지만 소방청 안대로라면 일단 4대 중증 환자가 응급실을 찾은 뒤엔 의료진 업무가 된다는 불안감도 깔려 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입장문을 통해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는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관상동맥중재시술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세계 공통 지침"이라며 "가장 가까운 병원에 빨리 이송하고 빠른 전원으로 치료하는 건 듣기엔 그럴듯하나 환자 생명과 안전에 위해를 끼친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재 하에 이송이 당장 어려운 증증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우선지정병원을 찾도록 하는 응급실 뺑뺑이 대책을 논의 중이다. 소방청 안과 방향은 비슷하되 구급대원이 아닌 광역상황실을 거쳐 병원을 연결하는 게 다르다. 병원이 의사가 지휘하는 광역상황실 판단을 더 무겁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소방청 안보다는 의사계와 타협할 수 있는 안으로 평가된다.

다만 배후 진료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산하기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골든타임 안에 응급 수술이나 시술을 할 수 있는 배후 진료 역량 부족이 응급실 뺑뺑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증원, 지역의사제 등으로 배후 진료 문제를 풀려면 수 년은 걸린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완화를 위한 단기 대책으로 일단 국립대병원 같은 권역별 최종 진료 기관이 중증 환자를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시급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센터 상황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세종=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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