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도 ‘마가’ 외친다 “Make America Go Away”



그린란드 제2 도시 시시미우트 주민 앙구악 니코 레너트(48)씨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 ‘덤 앤 더머’ 합성 이미지를 올려놓았다. 어리석고 멍청한 두 주인공 얼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 사진을 합성했다. 배경 사진은 그린란드의 트레이드마크인 거대 빙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를 어떤 방법으로든 손에 넣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반발심으로 올렸다. 지난 10일 본지와 온라인으로 인터뷰한 그는 “‘트럼프는 그저 멍청이(idiot)에 불과하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린 트럼프가 다음 행동 계획으로 그린란드 획득에 팔을 걷어붙일 것이라는 전망 속에 본지 인터뷰에 응한 그린란드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덴마크 자치령이라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레너트씨는 냉전 시절 미국이 소련 미사일 조기 경보용으로 지었다가 방치해 지금은 폐허가 된 옛 미군 레이더 기지를 언급하면서 “미국이 남긴 것이라곤 산도 보이지 않는 얼음 속의 고철 덩어리뿐이다. 필요할 때만 그린란드를 이용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수도 누크에 거주하는 트리나 에발드센(41)씨는 “우리는 영원히 그린란드인으로 남을 것이며, 미국인이나 다른 어떤 문화권 사람이 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이 자원과 돈 때문에 그린란드를 노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우리 국민과 가치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것”이라고 말했다.
누크에 사는 핏시 마리(45)씨는 “정말 감정적으로 격동의 나날이었다”며 “이번 주 미국·덴마크·그린란드 외교장관 회담이 예정돼 있는데, 우리는 미국 일부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며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들이고 인구도 적다. 이누이트로서 자연과 매우 가깝게 살아왔고, 해안가의 많은 가족들은 사냥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너무 생소하다”고 호소했다.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역시 누크 주민인 베르타 룬트 올센(33)씨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더 많은 그린란드인들은 자주권과 독립을 원한다”며 “문제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그린란드가 해외에 파는 건 생선이 전부이고, 광물 채굴 관련 법률은 허술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자치령이라는 지위 내에서의 경제적 기반 취약성을 지적한 것이다.
덴마크 본토에서도 반(反)트럼프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이존택(71) 전 재덴마크한인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코펜하겐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매일 시위가 열리고 있다”며 “사람들이 몰려와 ‘트럼프 당신 마음대로 하지 마라’ ‘그린란드는 영원히 덴마크 땅이다’ 등의 구호를 외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도 반트럼프 분위기가 확연하다.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Greenland is not for sale)’라는 구호와 빨간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그린란드 국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의혹과 그의 머리 색깔에 빗대 ‘주황색 소아성애자’라고 부르거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차용한 ‘MAGA(Make America Go Away·미국 꺼져라)’라는 구호도 올라왔다.
그린란드 주민들의 의견이 반트럼프, 친(親)덴마크로 똘똘 뭉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적지 않은 주민이 이 사안을 계기로 오랫동안 자신들을 지배해 온 덴마크에 대한 반감과 완전 독립에 대한 열망도 함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래의 대가’인 트럼프가 검토대로 주민 1인당 최대 10만달러(약 1억4700만원) 현금 지급 방안을 제시할 경우 저소득 주민이 상당수 동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린란드 정치권의 분위기도 덴마크와 다른 기류로 흐르고 있다. 그린란드 5개 정당은 지난 9일 공동 성명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행태를 끝내야 한다”면서 “우리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린란드 정치권에서는 덴마크 정부 인사를 배제하고 직접 미국 측과 협상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11일 소셜미디어에 “국제법과 민족 자결권을 믿는다”고 써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손에 넣기 위해 군사 작전까지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을 거듭 밝히면서 유럽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영국과 독일 등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은 그린란드에 군대를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북극 안보에 대한 트럼프의 우려를 잠재우고 유럽도 이 지역 안보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이번 주 예정된 미·덴마크·그린란드 3자 외교장관 회담이 그린란드의 향후 상황에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과 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다. 루비오는 백악관이 그린란드 획득을 위한 군사 행동도 옵션으로 거론해 나토 동맹 등이 동요하자 “매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선 당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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