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 겨울, 헤겔을 읽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6. 1. 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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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선생 ‘헤겔…’ 출간기념회
난해한 ‘정신현상학’ 주해본 의미
공동체 정신으로 일관되게 해석
포기했던 ‘괴서’… 다시 읽을 결심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달 26일 한양대학교 HIT 관에서 뜻깊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주관한 이 모임은 이병창 선생의 책 ‘헤겔의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먼빛으로, 2025)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100명 가까운 연구자들이 참석해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주해 본으로 간행된 건 국내 최초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괴물과 싸우다 필자도 괴물이 된 듯하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한답시고 약 1천200개의 주를 달고 거의 매 구절마다 해제를 덧붙였더니, 바닷가 바위에 붙은 굴 딱지 같은 모습이 아주 흉하게 보인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가’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어떤 책이기에 50년에 이르도록 헤겔을 연구해 온 노학자가 서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까. 헤겔을 읽지 않은 이들도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목으로 꼽힐 만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등장하는 ‘정신현상학’ 4장의 서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에 대해 그 자체로 자기에게 나타난 가운데 또 이런 사실을 통해 자기의식은 그 자체로 자기에게 나타난 존재가 된다’. 짧지만 읽으면 누구라도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모호하고 난해한 이 문장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중에서는 그나마 쉬운 편에 속한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이라는 거울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과 마주하며 순간순간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지만 막상 의식 자체를 대상으로 사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데서 기인한다. 거울이 거울 스스로를 비출 수 없는 것처럼 의식이 의식 자체를 의식하는 일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내게도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짧은 인연이 있다. 석사과정 1학기 때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모 교수님이 분명히 동양철학 과목인데도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쨌거나 석사과정 시절에는 세계사의 주인공이 나라는 터무니없는 패기가 있었던지라 무모하게도 내가 첫 발제를 맡게 되었다. 이윽고 첫 시간에 발표를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결국 사달이 났다. 지켜보던 교수님이 나의 발표를 제지하더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호통치셨다. 나는 “헤겔이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하니 제 발표도 따라서 무슨 소린지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입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나와 ‘정신현상학’과의 인연은 끝나고 말았다. 당시 나는 칸트의 저술을 읽으며 나름대로 칸트의 철학은 이해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당시 내가 이해한 칸트는 대부분 오해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내게 오해조차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종의 괴서(怪書)로 남아 있다.

이렇듯 ‘정신현상학’은 세상에 나온 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진의가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난해한 고전으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고, 부분적 해석만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병창 선생의 이 책은 ‘의식 경험’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작품 전체를 일관되게 분석하며, 절대정신을 ‘헨 카이 판’(hen kai pan-하나이면서 동시에 전부)의 공동체 정신으로 해석한다. 한마디로 헤겔의 절대정신은 원대한 공동체 정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간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한국어로 번역되어도 한국어로 읽을 수 없고, 그렇다고 독일어를 안다고 해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헤겔어를 알아야 비로소 읽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었다. 이제 이병창 선생의 번역과 주해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우리말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으니 나 또한 ‘정신현상학’을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 겨울에 마칠지 다음 겨울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헤겔을 읽기 좋은 계절은 겨울일 터이고, 이번만큼은 누구도 나를 제지하지 못할 것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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