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영화 '한란', 제주4·3의 진실을 마주하다

전남일보 2026. 1. 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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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미 감독의 '한란'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영화 '한란' 스틸컷. 네이버

지난 1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영화 〈한란〉이 특별 상영되었다. 필자는 이날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영화 〈한란〉을 감상했다. 국회의원들과 행보를 함께한다는 데 개인적 의의를 두고(?).

필자에게는 사전 스크리닝이 있었다. 지난 가을과 겨울 제주 4·3평화공원을 두 차례 다녀왔기에 그러하다. 그곳에서 해설을 듣고 눈에 담은 제주 4·3사건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1948년의 제주는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해방공간이 아니었다. 일제에 충성했던 군·경을 재채용했던 미 군정 및 이승만 정부의 군·경은 제주 양민들에게 야만적 침략군이었던 것이다. (장을병 교수가 미 군정기를 '해방공간'이 아닌 '8·15공간'임을 강조한 연유를 이로써 짐작해본다.)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희생된 양민의 수다. 2024년 제주인구의 1/10로 공식확인되었지만, 추가확인중이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행불자가 워낙 많아 제주인의 절반수가 희생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3평화공원에 적혀 있는 너무 많은 희생자 이름, 너무 많은 묘비. 그 위로 날아드는 많은 까마귀떼가 희생자들의 원혼인가 싶게 처절함이 깃든 곳에서,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나쳤던 필자의 얄팍한 역사지식을 스스로 책망해보았던 시간이었다.

1947년 3월 1일 민생고에 항의하던 제주민을 향해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했다. 1년 후인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원들은 경찰서와 극우단체를 무장공격하기에 이른다. 이를 빌미로, 이승만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에 혈안이 되었다. 이때부터 1954년까지 7년 동안 제주도는 오갈 데 없는 폐쇄의 섬이었고 제주도민은 살해되거나 강간 후 살해되었다.

군·경의 심상찮은 광기가 감지된 양민들은 바닷가 마을에서 한라산 속으로 피신한다. 남정네들이 먼저 산으로 피신을 했는데,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니 젊은 처자와 아낙들도 위험하다. 시어머니(배우 강명주)의 등떠밀림에 동네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른 아진(배우 김향기)은 여섯 살 어린 딸 해생(배우 김민채)과의 이별이 못내 걸린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상식을 군인들은 무참히 짓밟고 불까지 질러 동네는 잿더미가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아진은 딸 찾으러 황급히 산을 내려간다.

한편 해생은 총 맞아 쓰러진 할머니 품 안에서 기절했던지 한나절이 지난 후에야 눈을 뜬다. 아장아장 집으로 간 해생은 피란짐을 꾸린다. 놋숟가락 3개와 그릇 한 개, 그 안에 콩이 한줌 들어 있다. 그러고는 어멍 찾아 산으로 오른다.

영화 〈한란〉은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은 배우들 모두에게 완벽한 제주말을 구사하도록 했다. 그것도 후시녹음 하나 없이 동시녹음을 했으니, 배우들은 제주말을 습득하고 리딩과정부터 치열하게 대사를 소화했을 것이다. 제주 방언은 'ㅏ'를 대부분 '아래아'로 보존 사용한다. 어간과 명사가 토속 우리말이라 어감이 아름답다. 그렇지만 의미를 알아듣지를 못한다.

문득 지역 북 페어에서 보았던 《제주어 마음사전》(2019; 제주지역 출판사 '걷는사람' 발행), 양전형 시인이 펴낸 《제주어 용례사전》(2021)의 필요성이 크다 싶다. 그래서 영화는 자막을 넣었다. 자막과 함께 들리는 대사가 토속적 아름다움에 정감이 넘쳤다.

영화에는 잔혹한 인간사에 대비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배경이었다. 필자가 감탄했던 '교래 자연휴양림'이 영화 속 숲이었고 자연유산인 천연동굴과 제주에 많고 많은 돌들도 미장센에 한몫을 했다. 아름다워서 더 슬프고 비경이라서 더 참혹한 대비가 영화에는 있었다.

필자가 궁금해 했던 국회의원들의 영화 〈한란〉에 대한 감상은 훌륭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SNS 글을 옮겨본다.

'4·3은 단지 제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냉전과 분단의 틈에서 이념의 이름으로 벌어진 국가 폭력과 민간인 희생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오랜 세월 진실이 탄압받고 침묵이 강요되었습니다.

유족과 제주도민의 용기와 헌신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습니다만, 아직도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기억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이고, 현재진행형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화콘텐츠의 힘입니다. 지난 12·3 비상계엄 때도, 계엄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영화 〈서울의 봄〉을 떠올리면서, "이거 막아야 된다" 하고 주저 없이 달려와 국회를 지켰습니다. 영화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감각으로 번역해서, 지금의 시민들에게 역사 인식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