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진학 디자인] 학생의 성장, 평가 설계에서 시작된다
김기영 학교법인 선목학원 장학실장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된 올해,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은 겉으로 보면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시간표의 구조는 작년과 같고, 과목명만 공통과목 1·2로 구분되었을 뿐이다. 학생부 역시 1학년까지는 기존과 같이 학년 단위로 기록된다. 제도만 놓고 보면 '달라진 것이 없는 첫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교실 안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미 중요한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과목이나 전형이 아니라, '평가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라는 질문이 교실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가르치느냐 보다, 배운 것을 어떤 질문과 과제로 드러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교의 역량이 학생의 학습 경험을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성취기준별 성취수준을 바탕으로 한 수업과 평가의 연계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수행평가의 양적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기준이 담고 있는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의 세 가지 내용 요소를 통합적으로 교수·학습 및 평가에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의 한계인 성취기준 재구성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어떻게 해석하고, 성취수준을 어떻게 설정하여 적용하느냐에 따라 학생이 경험하는 학습의 깊이는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같은 교과, 같은 성취기준이라 할지라도, 핵심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취기준 해설과 성취수준 적용 시 고려사항을 얼마나 면밀하게 분석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역량 함양 수준과 학교생활기록부에 축적되는 성장 기록의 질적 밀도가 근본적으로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단위학교의 과목별 평가 설계 방향성이 학생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가가 결과 확인에 머무를 경우 학생은 정답을 맞히는 데 집중한다. 반대로 평가가 사고 과정과 탐구의 흔적을 드러내도록 설계될 경우,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선택의 이유를 정리하며 학습의 맥락을 축적하게 된다. 이 차이는 고스란히 학생부 기록의 질로 남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2학년부터 학생부가 학기 단위로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학생의 성장을 더 세밀하게 읽어 낼 수 있는 구조적 변화다. 학기마다 축적되는 기록은 단편적인 활동 나열이 아니라, 수업과 평가를 통해 어떤 사고의 성장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수행평가명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그 학교가 어떤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을 바탕으로 사고 과정을 평가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정보가 된다.
2028 대입을 앞두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은 아직 전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대입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대학이 주목하는 핵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어떻게 접근해 왔는가다. 그리고 이 과정은 개별 학생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과 수업 안에서 그 사고 과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설계된 평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올해 고1 교실에서 관찰되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평가가 더 이상 '시험 일정'이 아니라 학습의 방향을 규정하는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교과 협의회를 통해 성취기준을 재해석하고, 평가 문항을 설계하며, 학생의 사고 과정을 읽어내는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학습을 설명하는 언어를 갖게 된다.
결국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첫해는 변화가 없었던 해가 아니라, 변화의 주도권이 학교로 이동한 첫해라 할 수 있다. 교육과정 문서가 아니라, 단위학교의 평가 설계 역량이 학생의 학습 경험과 기록을 결정하는 구조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의 기준을 재정의할 시점이다. 성적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학교,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학교가 진정으로 훌륭한 학교다. 뛰어난 학생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좋은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단위학교의 대입 결과를 묻기 전에, 이 학교의 교과 평가는 학생의 사고와 성장을 얼마나 드러내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2028 대입을 준비하는 진짜 시작은 특정 학년이 아니라, 평가를 통해 학생의 성장을 읽어낼 수 있는 교실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