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생강나무 / 김호진

생강나무 / 김호진
생강나무 잎을 문지르면 생강냄새가 난다// 이른 봄 산수유보다 한 뼘 먼저 꽃을 피운다// 산수유보다 한 움큼 더 꽃피운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 가슴을 문지른다// 화근내 진동을 한다// 지난 겨울 아궁이보다 한 겹 더 어두운// 아니 한 길 더 깊은 그을음 냄새가 난다
『생강나무』(모아드림, 2002)
생강나무는 왜 산수유보다 먼저 세상을 보고 싶을까. 아마도 봄 하늘이 깨어나기 전, 찬 공기 속에서 '시의 첫 행을 얻으려고' 그러는지도 모른다. 생강나무의 봄은 '형체 이전의 봄'이다. 무형의 손끝으로 허공을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문을 열고 나와 '도(道)'를 외치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호진(1955~, 대구 출생)의 「생강나무」를 읽으면, 초봄 노란 꽃망울을 따 향기를 맡고 싶어진다. 세상 밖이 얼마나 추운지도 모르고,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쬐그마한 황금빛 꽃 모자를 쓰고 나온다. 아무것도 없는 겨울 숲에서 노란 스위치를 켜는 이 꽃나무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한 뼘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녹나무과)는, 줄기와 가지에서 '생강 향'이 난다. 손끝으로 비비면 생강나무는 자기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꽃망울은 가지에 달라붙은 듯이 핀다. 반면 산수유(층층나무과)는 꽃빛으로 개성을 뽐낸다. 붉은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긴 시간을 인고(忍苦) 한다.「생강나무」가 자신만의 향기로 바람에 깊이 스며드는 존재라면, 산수유는 향 대신 노란 투피스를 입고 이미지로 자신을 뽐낸다. 쟈크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숲속에서 늘 서로를 닮아 가지만, 끝내 하나가 되지 않는다.' 생강나무가 감각적이라면, 산수유나무는 사색적이다. 생강나무가 '시작도 끝도 가벼운 빛의 흐름'의 미학자라면, 산수유는 '시작은 밝게, 끝은 깊게' 파내려 가는 철학자에 가깝다. 두 나무는 서로를 비추되 닿지 않고, 서로를 닮되 같지 않다. 산수유가 기다림 · 시간 · 결실에 가깝다면, 생강나무는 향기 · 감각 · 즉각성에 가깝다. 동양적으로 말하면, 산수유가 형(形)의 도(道)라면, 생강나무는 상(相)의 도이다. 삼월에 잎보다 먼저 잎 나올 자리에 노란색 꽃망울로 피는 생강나무나, 겨울에 붉은 열매를 작은 악기처럼 매달고 있는 산수유를 보면, 참으로 회화적이다.
김호진은 '생강나무' 필 때 "화근내"가 "진동"한다고 말한다. 그 까닭은 "지난 겨울 아궁이보다 한 겹 더 어두운" 어떤 상실의, "그을음 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향이 나면 생강나무, 향이 없으면 산수유다. 작은 세 송이가 삼각형처럼 그룹으로 피면 생강나무, 꽃자루 끝에 10~20송이가 동그랗게 뭉쳐 피면 산수유꽃이다. 나무의 키가 크면 산수유이고, 키가 작으면 생강나무다. 그런데 이 둘은, 봄볕의 귀에 대고 노란 말을 한다.
김동원(시인·평론가)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