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막힌 변비, 멈춘 변비
변비를 진단할 때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기준은 로마기준(Rome criteria)이다. 이 기준에서 변비는 단순히 ‘변이 안 나오는 상태’가 아니라, 배변 빈도 감소, 잔변감, 과도한 힘주기, 단단한 변, 배변 시 불편감 등이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상태로 정의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개념이 배출 장애 변비다. 변이 직장까지는 내려오지만, 골반저 근육이나 항문 기능의 문제로 배출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변비에 대한 개념으로 이를 출구 폐쇄 변비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변비를 이렇게 ‘출구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외과의사 윌리엄 레인은 변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변비란 단순히 배출의 실패가 아니라, 대장이 그 내용물을 앞으로 밀어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는 변비를 기능과 구조의 문제를 넘어 삶의 리듬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우리는 과연 변비를 ‘참아야 할 증상’으로만 대해왔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변비에는 출구 폐쇄 변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장 자체의 운동성이 저하돼 변을 앞으로 보내지 못하는 서행성 변비가 있다. 알기 쉽게 ‘대장무력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때는 아무리 힘을 줘도 내려올 변 자체가 없다. 이 관점에서의 문제는 배출이 아니라 수송이다. 대장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역할이 다르다. 특히 직장과 가까운 왼쪽 대장, 이를 의학적으로 후장(後腸)이라 하는데, 배변을 지휘하는 천골신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이 부위가 살아 있느냐가 배변 회복의 중요한 관건이 되기도 한다.
서행성 변비 환자 가운데 비교적 젊고, 활동적이며, 전신 상태가 좋은 예도 있다. 이들은 자율신경계의 기능이 잘 유지된 상태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살아 있어 식이섬유 보충, 장운동 촉진 약물, 규칙적인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실제로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는 환자들은 대개 긍정적이고, 활동적이며, 신체 리듬을 다시 회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 시기의 치료는 ‘약’이 아니라 몸의 리듬을 되살리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는 보존적 치료로 해결되지 않는 서행성 변비다. 대부분 수십 년에 걸친 변비 병력이 있으며, 우울증, 수면장애, 운동부족과 함께 전반적인 체력 저하 등 신체적·정신적 문제가 함께 동반된다. 이는 단기간에 생긴 병이 아니라 20년, 30년 이상 잘못된 방식으로 방치된 결과인 때가 많다. 이 단계에서는 대장이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무기력해지고, 거의 마비된 상태에 이른다. 이때는 수술이라는 치료 선택지도 고민하게 된다.
물론 수술은 신중해야 한다. 수술의 방향은 움직이지 않는 장을 명확하게 구분해 절제하고, 다시 배변의 흐름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한 변비의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항문직장 생리검사를 통해 배출 기능을 확인하고 직장의 저장능력과 배출 협응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며 신경 전달의 이상 여부를 평가하고 대장 통과시간을 검사해 대장의 운동성이 전반적으로 소실됐는지도 확인한다. 수술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절제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변비 환자에 중요한 것은 약이나 수술이 아니라, 이런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의사를 만나는 일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변비와 변실금 등 배변 장애 환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대응이 충분하다 보기 어렵다. 의료수가 역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의료 현장의 노력이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도 분명 존재한다.

변비는 결코 사소한 증상이 아니다. 삶의 질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을 침식하는 질환이다. 이제는 변비를 참을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구분해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바라볼 때다. 변비는 하나의 병이 아니다. 막힌 변비와 멈춘 변비는 전혀 다른 치료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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