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부산 ‘맑은 물’ 갈증

권혁범 기자 2026. 1. 11. 19:0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수십 년 시민 공포에도 낙동강 하류 수질오염 ‘방치’
해양수도·행정통합 진전 계기, 취수원 다변화 해법 제시해야

부산 사람은 왜 서울 사람보다 일찍 죽을까. 무려 2년 몇 개월이나. 수십 년 전 출제된 문제인데 난도가 매우 높다. 답안지는 아직 빈칸이다. 국가데이터처 최근 통계(2023년)를 기준으로 부산 사람의 평균수명(기대여명)은 82.6세다. 전국 최하위권, 특별·광역시 중 압도적 꼴찌다. 가장 오래 사는 서울 사람(85세)보다 2.4년 먼저 죽는다. 날로 치면 880일 정도다. 누군가에겐 하루하루 몰라보게 크는 손주를 지켜볼, 누군가에겐 수백 번의 일출과 일몰을 가슴에 품을, 또 누군가에겐 두 번의 겨울과 봄을 맞으며 치열했던 삶을 정리할 소중한 시간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 ‘생의 간극’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2014년) 2년에서 오히려 0.4년 늘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부산은 암 발생률과 사망률 1위 도시다. 타고난 유전자가 특별히 병약한 것도 아닐 텐데,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 부산에서 산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앞서 생을 끝내야 한다는 것. 부산 사람은 억울하다.

지금까지는 팩트다. 이제부터는 해석 정도라고 해두자. 부산의 짧은 평균수명은 수십 년 미스터리다. 수많은 원인이 복잡한 매듭으로 얽혔다. 그러나 이 역시 추론일 뿐, 뭐 하나 콕 집어 분명하게 밝혀진 건 없다. 급속한 고령화, 열악한 의료 환경, 소득 불균형, 흡연·음주·식습관, 사회 안전 인프라 부족 등이 단골로 언급된다. 부산 사람의 화끈하고 급한 성격 등 기질적 요인도 거론된다.

미스터리가 수십 년째 풀리지 않은 것처럼, 수십 년째 지목되는 ‘고전적 원인’도 있다. 물, 식수다. 이 또한 인과관계가 명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수많은 부산 사람이 “물 때문”이라고 여긴다. “물이 더러워서 그렇지, 왜긴!”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트라우마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다. 식수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부산 먹는 물 90%가량이 낙동강 하류에서 나온다. 강원 태백에서 발원해 국토를 가로질러 부산에 닿는다. 1300리를 흘러 내려오는 길, 상류 도시와 산업단지가 뱉어낸 유해 물질에 생명력을 잃는다. 해마다 여름이면 반복되는 녹조는 ‘죽은 물’의 상징이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다. 과학적 수치도 충격적이다. 국제신문 새해 기획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물환경정보시스템이 출처다. 지난해 7월 1일 낙동강 하류 경남 양산·물금 지점의 총유기탄소량(TOC)은 ℓ당 6.1㎎까지 치솟아 5등급(나쁨). 특수 정수 처리해도 공업용수로나 쓸 수 있는 수준이다. 미생물 오염 지표인 총대장균군 수는 9월 15일 100㎖당 15만이다. 생활용수 기준(5000 이하)의 30배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 지난해 1월 6일~10월 27일 40차례 조사에서 물금·매리 취수장 주변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1·2등급(좋음)을 유지한 횟수는 14차례에 그쳤다. 여름철(8월 26일~9월 29일)엔 여지없이 4등급(약간 나쁨)으로 떨어졌다. TOC 역시 6월 24일~7월 8일 4·5등급이었다. 미생물 오염도는 더 심각해 총대장균군 수가 5~10월 ‘등급외’를 찍었다. 사실상 먹어선 안 될 물, 심정으론 절대 먹지 못할 물이다. 그런데도 부산 사람은 상류에서 ‘쓰고 버린 물’을 거르고 걸러 약 쳐서 먹는다. 설사 구정물이 청정 샘물이 된들, 부산 사람 마음에 앙금으로 쌓인 공포와 불안은 걸러내지 못한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 이후로만 따져도 부산의 취수원 다변화 시도는 35년째 이어진다.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리라 기대했던 해수 담수화 사업 등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경남 합천 황강 물과 창녕 강변여과수를 끌어오는 대안이 남았다. 그러나 피해를 우려한 영향 지역 주민 반대를 비롯해 해결 못 한 난제가 여전히 많다.

지난달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옮겼다. 이제 부산을 해양수도,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아이러니다. 부산은 지금 물 때문에 죽을 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부산에 사는, 물 계급 가장 밑단에서 신음하는 ‘국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할 의무는 정부에 있다. 지역 간 상생만 주문하면서, 뒤로 숨을 일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으로 ‘지방 주도 성장’을 첫손에 꼽았다. 때맞춰 부산과 경남이 행정 통합하는 ‘경남부산특별시’ 논의도 무르익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부산의 맑은 물 갈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경남 취수 지역에 파격적인 예우와 지원을 쏟아야 한다. 그곳 주민이 안심할 수 있는 과학적 데이터도 제시해야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낙동강 상류 오염원을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을 찾든, 부산 동네별로 새로운 취수원을 만들든 획기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 시민이 물 때문에 평생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도시에서 해양수도를 말하는 건 공허하다. 부산 사람에게 ‘빼앗긴 880일’을 되돌려주는 일, 우선은 맑은 물에서부터 시작하자.

권혁범 편집국 부국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