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놓은 정치개혁] 정치권이 빈둥거린다면 ‘시민의회’는 어떨까

김다솜 기자 2026. 1. 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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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선거제 개편 가능한가
정치개혁 미룰수록 이득인 거대 정당
민의 반영하는 공론조사 시도에도 한계
정치권 한계 극복한 시민의회 사례 있어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 180일 전까지 결정해야 합니다. 2026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선거구 획정 시한은 지난해 12월 5일입니다. 하지만 획정은커녕 이를 논의할 기구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시간을 지나 구성됐습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이제 관행입니다.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에 결정 권한이 있어 생기는 문제입니다. 개혁 대상인 거대 양당이 정치개혁 주체입니다. 이 논의 구조를 아예 바꿔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정치권에만 정치개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답은 이미 여러 차례 선거 과정에서 확인됐다. 유권자들은 정치개혁 과정에 직접 참여할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경남정치개혁광장시민연대와 소수정당 등은 지난해 10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남도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과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시민과 정당의 의견 반영 절차를 마련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시민 요구를 반영하려면 기존 보수 양당 구도를 바꿔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례대표제 확대, 광역·기초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좀처럼 정치개혁 논의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등이 2023년 6월 30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참여연대

서둘 이유가 없는 거대 양당

정치개혁 논의가 늘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 선거 체계에서 가장 큰 수혜자인 거대 양당, 즉 정치개혁 대상이 정치개혁 추제인 게 문제다. 지금 선거제도가 거대 양당에 얼마나 유리한 구조인지는 수치로 바로 확인된다. 지난 지방선거 역시 고스란히 문제점을 드러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준 경남지역 정당별 득표율은 국민의힘이 62.36%로 가장 높았다. 선거구와 상관 없이 경남 유권자 60% 이상은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이 31.49%, 정의당이 4.28%로 뒤를 이었다. 기본소득당, 녹색당, 진보당은 1% 미만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득표율은 각 지역구 지방의원 득표율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경남도의회 64석 중 국민의힘은 60석(93.7%)을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은 4석(6.2%), 나머지 정당 의석은 없다. 경남도의회 의사결정은 경남 유권자 정당 지지율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 점만 높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정치개혁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남지역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누리는 특혜 역시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

2022년 지방선거 전남지역 정당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73.71%로 가장 높았다. 국민의힘이 11.83%로 뒤를 이었고 정의당(7.41%), 진보당(5.48%), 기본소득당(1.55%) 순이다.

전남도의회 의석은 전체 61석 중 더불어민주당 56석(91.8%), 진보당 2석(3.2%)이고 국민의힘·정의당·무소속이 각 1석(1.6%)이다. 전남에서는 특히 정당지지율이 진보당 두 배인 국민의힘이 의석 수는 진보당보다 적은 왜곡도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경남에서 62%대 득표율로 93.7%, 더불어민주당은 전남에서 73%대 득표율로 91.8% 도의회 의석을 차지했다. 거대 양당이 다른 현안들을 제쳐놓고 정치개혁에 나설 이유가 별로 없다.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 거쳤더니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정치권에 정치개혁 논의를 맡겨둘 수 없다는 고민도 이미 묵은 과제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에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실험이 진행된 적도 있다. 정치권은 민의를 반영할 방법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를 제시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023년 성별, 연령별, 권역별을 고려해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학습한 다음 이틀 동안 숙의 과정을 거쳐서 개편안을 내놨다.

정개특위는 공론조사 결과를 선거제 개편안 논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남인순 국회의원은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 공론조사를 실시한다"며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고, 이를 선거제도 개선 논의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공론조사는 실제 제도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정치권이 오히려 공론조사 결과 뒤로 숨으면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정치개혁을 진행할 시간을 끌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등은 2023년 6월 30일 '공론조사 이후 선거제도 개혁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도 공론조사의 한계점이 언급됐다. 민의를 수렴한다는 공론조사의 취지 자체는 좋지만 민의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결정권을 쥔 이가 선거구를 정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강우창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론화 모델, 의제 선정, 추진 계획을 수립할 공론화위원회가 없어 국민들이 공론조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가질 수 있다"며 "선거제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정개특위가 조사 용역 주체로 정당 간 협의를 통해 추진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도 마찬가지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진다. 경남도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꾸려 선거구를 정한다. 도의회와 도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11명의 위원을 추천해서 꾸린다. 일각에서는 추천 위원조차도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에 얽혀있다고 지적한다.

경남정치개혁광장시민연대 등은 경남도를 향해 선거구획정위원과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밀실에서 합의하는 선거구 획정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렇게 합의된 내용은 도의회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도의회는 선거구 획정안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의석 수와 선거구를 정하듯이 도의원도 도의회 안에서 결정 권한을 쥐게 되는 셈이다.

이병하 경남정치개혁광장시민연대 공동대표도 "공론조사를 넘어 정당이 아니라 제3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결정권을 줘야 한다"며 "소수 정당에서 추천하는 사람들도 선거구획정위에 들어가야 폭넓은 의견 수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낸 안이 도의회로 가게 되면 도의회를 독점하는 정당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 지난해 9월 9일 정치개혁 시민사회 토론회를 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시민의회가 답을 줄까

'시민의회'가 답이 될 수도 있다. 유권자가 정치개혁에 참여하기 위한 자리부터 만들자는 얘기다. 1986년부터 2020년까지 전세계에서 280여 차례 시민의회가 운영됐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 2024년 개최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정치개혁 시민사회 토론회'에서 시민의회가 거론됐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캐나다 온타리오주, 네덜란드 등에서는 시민의회가 선거제도 개혁에 나섰다.

캐나다는 무작위로 시민을 추첨하고 정당 인사를 배제한 채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시민의회에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를 전면 검토하면서 기준을 잡았다. 시민이 직접 선거제도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정정화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선거법과 헌법 개정, 기후위기 대응 등 정치개혁과 사회적 합의 형성의 수단으로 시민의회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며 "충분한 학습과 정보제공으로 시민이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몰입된 정치인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엘리트를 선발하는 기존 대의제는 일반 국민과 유리돼 오히려 대표성이 저하되고 선거만이 대표성을 갖췄다는 것은 오해"라며 "시민의회 운영은 수당 지급 등 예산 부담이 있지만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대의제 운영 경비와 비교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고 짚었다.

/김다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