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나은 시골살이 올까요?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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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 | 작가·‘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운이 좋았어. 겨우 5시간 헤맸다고 해.” 이젠 흔한 이야기다. 의료원은 있지만, 의사는 없다. 이런 현실은 의료파업 이후 더 심각해졌다. 보건소가 일주일에 이틀만 운영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보건소 문 여는 날에 맞춰 방문하기 힘들다. 아픈 몸이 보건소 일정에 맞출 리도 없다. 마을 버스정류소에선 읍내 의료원에 간다는 노인들을 만난다. 보건소는 차로 5분 거리. 의료원은 차로 20분을 가서 다시 읍내에서 순환 버스를 타야 한다.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시골로 오지 않겠다는 의사들은 의료파업 후 만난 환자 가족들에게 형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의사들을 믿고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다.
지난해엔 저상버스가 도입됐다. 한대뿐이지만. 여전히 노인은 아픈 무릎을 짚고 높은 버스계단을 오르내린다. 지팡이가 있으면 지팡이를 먼저 던지고, 보행기가 있으면 보행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행여나 버스운행에 폐가 될까 눈치도 봐 가면서. 어떤 날, 그날따라 버스에 빈자리가 없었다. 지팡이를 든 한 남자 노인은 서서 이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 여자 노인이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버스 뒷문 앞 계단에 앉았다. 나는 왜 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여자일까 생각했다. 교통카드 이용자에게 적용되는 환승 무료정책은 대부분 현금 이용자인 노인들에게 의미가 없다. 이동권이 비용이라는 생각은 이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나는 버스 시간이 개편된 후 3년 동안 다녔던 방과 후 교사 일을 잃었다. 친구는 오랫동안 해왔던 돌봄 일에서 해고됐다. 모두 자기 차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시골은 일자리 자체도 부족하고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구인광고는 주6일, 12시간 노동이 흔하다. 남녀차별 임금도, 허위광고도 있다. 광고와 다르다는 지적에 사장은 “그건 남자들 임금”이라고 했다. 근로계약서는 “친해지면 쓰는 것”이라거나, 그냥 형식일 뿐이다. 일터 곳곳에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은 늘 자리에 없는 사장 대신 노동자를 감시한다. 잠재적 도둑 취급이다. 노동자들은 쉼을 포기하거나 사각지대에서 쉴 자리를 찾는다. 추가 근로수당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출근은 근무시간 30분 전에 해야 한다. 사장은 하루 적정 업무량은 모르겠고 “늦게까지 일을 책임지는 모습이 예쁘다”고 했다. 빠른 손과 능률 향상,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한 사람만 거치면 알 수 있고 뒷말이 흔한 사회관계망에서 자발적인 입조심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협동조합 내에서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따른 편견으로 상대방을 타자화하고, 조종하려고도 했다.
어린이집부터 함께 다녔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학교 밖 청소년을 선택한 친구도 있다. 그는 그 괴롭힘을 부모나 가까운 어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모두가 다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참고, 참고, 참다가 급기야 자신을 해치게 된 후에야 드러난 사실이다. 중학교는 단 하나뿐. 학교에 다니거나 그만두거나. “올해부터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금 예산이 줄었대요. 최대 6개월로.” 가해자는 그 자리에, 피해자가 떠나는 현실은 여전한데, 지원금까지 줄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폭력에 순응하거나 협력하는 법, 가해자로 타자 위에 군림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웠다. 다른 선택이 가능해야 바뀔 수 있다.
“너무 화가 나요. 지원금이 있는 업종만 살아남았어요. 미용실을 보세요.” 비어 가는 상가에 스포츠토토 같은 도박장이 들어선다. 기본소득조차 경쟁으로만 얻을 수 있다.
2026년이 밝았다. 부디 새해엔 이 모든 일상이 조금이라도 살 만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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