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에 ‘문화다양성’ 가교를 놓으며 [6411의 목소리]


레티투하 | 교육학자
한국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기사님은 내 억양을 듣고 이렇게 물었다.
“베트남에서 왔다고요? 결혼하러 왔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교육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 질문은 한국 사회가 외국인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경험 중 하나였고, 이후 한국에서 마주하게 될 여러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나는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교육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언젠가 교육을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특히 한국의 교육 제도와 환경에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유학을 준비했고, 2019년 2월 아신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이주 여성과 관련된 강의를 수강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다문화 현실’을 완전히 다시 보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에 결혼 이주하는 여성들을 흔히 “성공했다”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한국에 대한 기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강의에서 접한 실제 사례들은 너무나 달랐다. 언어 장벽, 고립, 차별, 폭력…. 한국 사회에서 이주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베트남에서 듣던 이야기와 큰 간극이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해되지 않았다.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왜 문화적 차이가 이렇게 큰 갈등을 만드는가? 왜 외국인 여성은 하나의 틀에 묶여 규정되는가?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곧 내가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학위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을 배우며,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문화다양성은 본래 생물다양성 개념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생물이 공존해야 생태계가 유지되듯,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야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개념을 현실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문화다양성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우리는 ‘언어교육’ ‘상호문화역량 교육’ ‘소통능력 강화 프로그램’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은 결국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초기 활동 중 하나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법체류 이주 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었다. 기본적인 정보조차 얻기 어려운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 능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러 현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방향이 분명해졌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건전한 인적 교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 이민보다는 유학 기반 이동이 훨씬 적합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유학을 희망하는 베트남 학생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존중받으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자 사명이 되었다.
입학 절차뿐 아니라 한국 생활 전반을 관리하고 지원하다 보니, 유학이라는 제도만으로는 학생들의 안전과 적응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돕던 순천의 한 대학 신입 남학생은 외국인등록증을 아는 형에게 빌려주었다가 명의가 범죄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에 놓였고, 경기도의 한 대학에 입학해 생활 상담을 했던 여학생은 급성신우신염으로 대학병원 입원 권고를 받았으나 과도한 의료비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었다. 단순한 학업 지원을 넘어 법·의료·생활 전반을 포괄하는 기초생활교육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 일에 대한 나의 책임과 사명감은 더욱 분명해졌다.
“모두를 위한 좋은 교육”(G.E.A: Good Education for All) 나와 동료들이 정한 우리 회사의 목표이자 회사 명칭이다. 이 문장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설명한다. 교육은 사람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며, 결국 사회를 바꾼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더 깊은 소통과 더 넓은 이해가 자리 잡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첫번째 한국’을 돕는 일을 계속 이어간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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