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우리술 이야기)삼오주, 말의 해에 빚는 특별한 술

한국전통주 중에는 술을 빚는 날짜가 딱 정해져 있는 술이 있다. 양주방에 기록된 구기자술이 대표적이다.
구기자는 뿌리와 잎, 꽃, 열매 등 모든 부위로 술을 담는다. 뿌리는 1월 첫 인일(寅日)에 채취해 잘게 썰어 그늘에서 말려두었다가 2월 첫 묘일(卯日)에 술을 빚는다. 잎은 사월 첫 사일(巳日)에 채취해 5월 첫 오일(午日) 담고 꽃은 7월 첫 신일(申日)에 따서 말려두었다가 8월 첫 유일(酉日) 담는다. 또 구기자 열매는 10월 첫 해일(亥日)에 채취하고 11월 첫 자일(子日)에 담는 식이다.
술 빚는 날을 정해놓은 또 다른 술이 삼해주(三亥酒)와 삼오주(三午酒)다.
삼해주의 해(亥)는 띠를 나타내는 십이지의 끝인 돼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해주는 음력 설인 정월 초하루가 지난 뒤 첫 돼지날인 해일(亥日)에 술을 빚기 시작해서 12일(혹은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해일에 덧술을 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해일에 2차 덧술을 하는 방법으로 세 번에 걸쳐 빚는 술이다.
대체적으로 발효온도가 23~25℃일 경우 대부분의 술은 밑술을 한 후 2~3일 간격으로 덧술을 한다. 삼해주처럼 12일 간격으로 덧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저온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즈음은 1년 중 가장 추울 때다(올해는 설이 2월 17일이기 때문에 예외다). 추울 때 술을 빚기 때문에 12일 만에 덧술을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덧술 시기를 늦춘다는 것은 결국 저온에서 발효를 시킨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술이 20~25℃에서 발효시키는데 삼해주는 10~15℃에서 발효하는 장기 저온 발효주이다.
그렇다면 왜 돼지날마다 덧술을 할까. 그건 돼지가 나타내는 뜻이 있어서다. 돼지는 건강과 다산, 돈, 행복을 의미한다. 결국 삼해주를 빚어 마신다는 것은 이같은 기원을 담은 술이라는 깊은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말날인 오일(午日)에 빚으면 삼오주(三午酒)이다. 음력 설 이후 첫 말날에 밑술을 하고 12일 혹은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다음 말날에 덧술을 해준다. 만약 말날마다 네 번에 걸쳐 빚는 사양주라면 삼오주가 아니고 사오주라고 한다.
특히 올해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아닌가. 병오년은 육십간지의 43번째 해로 붉은색,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말을 상징하는 '오(午)'가 만나 '붉은 말의 해'라고 부른다. 말의 해에 삼오주를 정성 들여 빚는다면 더욱 뜻깊은 술이 될 터이다.
말은 전통적으로 강인한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말의 해, 더구나 불의 기운을 지닌 병오년에 말날마다 빚은 삼오주는 선물용으로도 더없이 좋은 술이다. 만약 승진을 앞둔 사람이거나 큰 일을 앞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전통적으로 삼오주를 마시면 출세하거나 권력을 얻는다고 믿었다.
삼오주를 빚는 방법은 옛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다. 술을 빚는 집안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두었는데 그럼에도 말의 날마다 덧술을 하는 것과 말이 상징하는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수운잡방의 삼오주 빚는 법이 조금 다르다. 첫 오일에 누룩을 물에 담가 수곡을 만들고 두 번째 오일과 세 번째, 네 번째 오일에 술을 빚어냈다.
오일마다 세 번에 걸쳐 빚은 술은 거의 100일이 걸려 완성된다. 저온장기발효는 술의 맛과 향을 더 좋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삼해주와 삼오주는 오늘날에도 빚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술의 의미를 아는 사람일수록 매년 삼해주와 삼오주를 빚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매년 6월이면 삼해주·삼오주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대구에서도 삼해주·삼오주대회를 개최한다. 6월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에서 경기도 성남의 한국술교육원과 공동으로 '제1회 삼해주·삼오주대회'를 연다.
말의 해에 힘 있고 정열적인 말의 기운을 그대로 녹여 낸 삼오주를 빚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듯하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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