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6년 전 ‘미완성’으로 완성된 교향곡 [.txt]

한겨레 2026. 1. 1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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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모의 미락(美樂)클
슈베르트, 25살에 4악장 대신 2악장
교향곡 제목도 없이 끝내 200년째 미스터리
미완의 예술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로 상징
같이 들을 클래식…프란츠 슈베르트, 교향곡 8번, D.759 ‘미완성’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초상. 19세기 후반 제작된 사진 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용히 연말을 보내며 문득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시간의 톱니바퀴를 따라 지나가는 365일을 마무리하고 한해를 끝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어린 시절, 엄마는 조곤조곤 노래를 부르셨어요. 입술 사이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곤 했지요. 나나 무스쿠리의 샹송, 아바 등 유행가의 구절구절이 어린 제 귀에 자연스럽게 박혔어요. 그중 귀에 선명히 남은 노래가 있어요.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마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이진관 곡, 김지평 사 ‘인생은 미완성’ 중)

선율이 쉽고 간결해서 읊조리기 좋지요. 그땐 가사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요, 이제 저도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구절구절이 이토록 와닿네요. 엄마는 이 노래가 쉬워서 흥얼거린 게 아니었어요. 아이들을 낳고 인생의 중반을 지나며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속에서 인생이 미완성일 수밖에 없음을 시시각각 깨닫고 노래하신 거였어요. 사랑도 인생도 완성이란 없는 것이죠. 근래,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이별을 겪으며, 다정하게 노래하는 첼로의 선율,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1악장이 떠올랐어요. “언피니시트”(Unfinished). 즉, 끝내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여덟번째 교향곡이에요.

어두운 심연에서부터 시작되는 1악장은 온통 불안한 분위기예요. 이때 가가멜이 떠올라도 어쩔 수 없어요. 만화 ‘스머프’에서 가가멜이 등장할 때 이 부분이 나온답니다.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주제로 서서히 고조되다가, 호른에 의해 지(G)장조로 바뀐 후, 첼로가 노래하는 더없이 따듯하고 정겨운 선율. “솔레~솔, 파솔라~솔.” 슈베르트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언어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스물다섯살의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전통적 4개 악장으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2악장까지만 남깁니다. 통상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이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처럼, 작곡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는데요. 이 곡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무려 6년 전에 미완성으로 남아요. 자신의 교향곡이 ‘미완성’으로 불린다는 것을 정작 슈베르트 자신은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직접 붙인 제목도 아닐뿐더러, 이 곡을 미완성으로 두려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대체 왜 쓰다가 만 것인지는 200년째 미스터리예요. 실은 그는 곡을 쓰다 만 적이 꽤 있어요. 작곡 중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기면서 ‘나중’을 기약한 것이죠. 20대 초반엔, 세개의 교향곡을 쓰다 말았어요.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선 거장 베토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미 여덟개의 교향곡을 세상에 내놨으니, ‘가곡의 왕’ 슈베르트뿐 아니라, 누구든 벌벌 떨었을 거예요. 가곡과 교향곡은 요즘 말로 ‘보법’이 다른 장르. 그래서일까요? 슈베르트는 교향곡 8번을 베토벤이 교향곡에서 결코 시도한 적이 없는 비(B)단조로 작곡해요. 그의 조심성이 느껴지죠?

1822년 10월 말. 교향곡 8번의 세번째 악장의 시작부를 끄적이던 슈베르트에게 어느 귀족이 곡을 의뢰해요. 슈베르트는 즉각, ‘방랑자 환상곡’을 써냅니다. 주머니에 작곡료가 선금으로 들어와 있었거든요. 결국 교향곡 8번과 ‘방랑자 환상곡’은 각각 D.759와 D.760으로 작품 번호가 나란히 붙어 있어요. 그런데 건망증이 심했던 슈베르트는 그만 교향곡 8번을 잊고 말아요. 게다가 11월엔 모태 솔로였던 그가 매독 진단을 받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1828년, 결국 슈베르트는 서른한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사이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을 발표했으니, 슈베르트에게 교향곡이란 마왕처럼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어요.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시 음악협회의 명예 회원으로 선정돼요. 감사의 의미로 1년 전 서랍에 넣어둔 교향곡 8번을 헌정해요. 악보를 협회장인 안젤름 휘텐브레너에게 보내는데요, 안젤름은 나머지 악보가 마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악보는 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5년 후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났으니 연주될 수도 없었지요. 결국 슈베르트 사후 37년이 지난 1865년, 빈에서 초연됩니다. 2악장까지만, 미완성인 채.

그런데 당시 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나 ‘투란도트’처럼 누군가가 이 곡을 마저 완성하지 않은 걸까요?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깊이 존경한 브람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곡은 형식 면에서 분명 미완성이지만, 내용 면에서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듣는 이의 영혼을 끝없이 사로잡는, 이토록 아름답고 친근한 사랑의 선율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교향곡 8번은 미완임에도 우리는 그의 음악을 완벽하게 느낍니다. 그렇다면 제목은 ‘미완성’이 아닌, ‘완성’이라야 맞지 않을까요? 저의 의문에 근래 희미하게나마 답이 보였어요. 미완성으로 남은 모든 작품에 ‘미완성’이라는 제목이 붙진 않아요. 결국 누군가 완성해서 연주하기도 하고요. 이 곡은 미완성이라서 “미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이 아니기 때문에 ‘미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어요. 결과적으로 ‘미완성’이라는, 이토록 멋진 제목이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이에요.

다시, 예술에 있어 ‘완성’이 과연 가능한지, 만약 슈베르트가 교향곡을 4악장까지 끝냈다면 그것은 ‘완성’된 것인지 의문이 드네요. 또 무대 위 자신의 연주가 완성되었다고 느낄 연주자가 과연 존재할까요? 브람스도 자신의 젊은 시절 작품을 훗날 대거 수정했으니, 예술에 과연 완성, 즉 끝이 있는 걸까요? 예술은 끝없이 가다듬고 파고드는 완성도의 바다에 빠지게 합니다. 디데이(D-day), 즉 마감일이 없다면, 끝없는 수정의 늪에 빠지는 것이죠. 예술도 인생처럼 물리적 시간과 적당히 만나야 비로소 마무리됩니다.

야속하지만 인생과 사랑은 완벽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네요.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좀 부족해도 괜찮아요. 인생도 사랑도, 완성과 미완성이 아닌, ‘지금 살아가고 있음’이 중요해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우렁차게 시작된 신년, 그 ‘시작’과 ‘마무리’ 사이, 이왕이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하고 곱게 살아야죠. 우리의 365일이 안팎으로 조용하길.

피아니스트

안인모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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