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인 엄마에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윤지의 애살맞아 생긴 일]
지난해 80대 할머니와 MZ 손녀 이야기인 <잔너리댁의 밥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분한 응원과 댓글 우리 가족에겐 큰 힘이 됐습니다. 올해는 할머니에 국한하지 않고 주제를 넓혀보려 합니다. 하동에서 밥벌이하는 청년의 일상생활 기록으로 보시면 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무뎌진다. 30년쯤 살면서 내가 배운 세상의 이치다. 웬만한 일은 그렇게 정리된다. 처음에는 아프고 서툴렀던 감각도 몇 번 겪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그 요령은 우리를 덜 다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무뎌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언제나 법칙이라는 그물 속에는 끝내 빠져나오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아무리 겪어도 둔해지지 않는 감각. 그리고 그중 하나가 애살이다.

결국, 이집트에 왔다. 또 엄마랑 같이. 지난여름 아비뇽에서 울고불고 싸워놓고도 다시 엄마를 데리고 여행을 왔다. 학습능력이 없는 내 애살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확히는 한국에 있는 사서 중에, 알렉산드리아에 가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은 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엄마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가 본 멋진 사서로 만들 거라면, 기왕이면 이집트 유물도 보고 오면 좋지 않을까. '기왕이면'이라는 말은 늘 문제를 데리고 온다. 여름 여행 이후 겨우 비워 두었던 자리에, 애살이 다시 스멀스멀 자기 자리를 찾아왔다.

오후가 되면 호텔로 돌아와 수영도 하고 책도 읽었다. 그렇게 하루를 써야만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몸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전날부터 목이 조금 아팠다. 이집트의 모래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했는데 관절 하나하나가 둔해져 있었다. 그래도 엄마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무리했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말이 곧 내가 애살 맞아서 이런 일정까지 짜놓고 스스로 몰아붙인 결과라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준비를 했다. 눈이 뜨겁고 몸이 무거웠지만 괜찮은 얼굴을 만들었다.

1월 7일은 가장 중요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가는 날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도서관 앞에 내려 달라고 하자 자꾸 여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렸는데, 도서관 경비가 온몸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 내일 오라는 말이었다. 그날은 콥트교의 크리스마스이자 이집트의 큰 공휴일이었다. 몸살로 룩소르 일정을 취소한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한 번 더 살이 쓸렸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일은 수도 없이 겪었지만, 그때 굳은 살이 박히지 않아 이번에도 또 아팠다. 다시 일정을 짰다. 다음 날은 여섯 시에 조식을 먹고 일곱 시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본 뒤 열 시 버스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엄마가 충분히 둘러볼 시간을 남겨 두고, 오후에는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