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인 엄마에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윤지의 애살맞아 생긴 일]

김윤지 하동군 근무 2026. 1. 8. 17: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엄마와 떠나 새해 이집트 여행

지난해 80대 할머니와 MZ 손녀 이야기인 <잔너리댁의 밥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분한 응원과 댓글 우리 가족에겐 큰 힘이 됐습니다. 올해는 할머니에 국한하지 않고 주제를 넓혀보려 합니다. 하동에서 밥벌이하는 청년의 일상생활 기록으로 보시면 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무뎌진다. 30년쯤 살면서 내가 배운 세상의 이치다. 웬만한 일은 그렇게 정리된다. 처음에는 아프고 서툴렀던 감각도 몇 번 겪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그 요령은 우리를 덜 다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무뎌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언제나 법칙이라는 그물 속에는 끝내 빠져나오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아무리 겪어도 둔해지지 않는 감각. 그리고 그중 하나가 애살이다.

애살은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감각이다. 쓸리고 긁히고 물집이 잡히면 굳은살이 생기기 마련인데, 애살은 몇 번을 겪어도 요령을 배우지 못한다. 굳은살이 생기면 감각은 무뎌지지만 대신 삶의 방패가 되어준다. 반면 애살은 여리고 예민한 채로 남아, 덜 아플 수 있는 선택이 있어도 끝까지 받아내는 쪽을 고른다.
엄마가 좋아했던 이집트 덴데라신전. /김윤지

결국, 이집트에 왔다. 또 엄마랑 같이. 지난여름 아비뇽에서 울고불고 싸워놓고도 다시 엄마를 데리고 여행을 왔다. 학습능력이 없는 내 애살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확히는 한국에 있는 사서 중에, 알렉산드리아에 가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은 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엄마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가 본 멋진 사서로 만들 거라면, 기왕이면 이집트 유물도 보고 오면 좋지 않을까. '기왕이면'이라는 말은 늘 문제를 데리고 온다. 여름 여행 이후 겨우 비워 두었던 자리에, 애살이 다시 스멀스멀 자기 자리를 찾아왔다.

이집트는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나라였다. 선택과 포기를 수없이 되뇌고, 추리고 또 추려서 겨우 만든 일정은 나흘 연속 새벽 네다섯 시 출발이었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후가 되면 숨이 막히듯 뜨거워지는 이집트에서 해가 없을 때 움직이는 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남들 다 하는 무난한 코스에 이동만 여섯 시간이 걸리는 신전들을 더 얹었다. 아비도스, 덴데라 신전. 굳이 빼도 되는 곳들이었다. 그런데도 가고 싶었다. 그 신전 앞에서 엄마가 "어머 윤지야, 너무 아름답당~" 하고 말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된 강행군에 결국 감기몸살에 걸린 나. /김윤지

오후가 되면 호텔로 돌아와 수영도 하고 책도 읽었다. 그렇게 하루를 써야만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몸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전날부터 목이 조금 아팠다. 이집트의 모래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했는데 관절 하나하나가 둔해져 있었다. 그래도 엄마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무리했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말이 곧 내가 애살 맞아서 이런 일정까지 짜놓고 스스로 몰아붙인 결과라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준비를 했다. 눈이 뜨겁고 몸이 무거웠지만 괜찮은 얼굴을 만들었다.

그때 엄마가 먼저 유적지를 너무 많이 봐서 이제 머리가 아프니 하루쯤은 여유롭게 쉬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감보다는 묘한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다. 애살 때문에 끝까지 놓지 못한 것을 엄마는 너무 쉽게 입 밖으로 꺼내었다. 결국, 유적지를 가장 많이 돌아봐야 했던 1월 5일, 몸살로 3달 전에 예약해 둔 새벽 5시 10분 출발 투어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남들 다 보는 것도 보고, 남들이 못 본 것도 보고 오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남들 못 본 것만 보고 돌아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찾는 날. 하필 공휴일이라 외부에 적힌 한글만 보고 왔다. /김윤지

1월 7일은 가장 중요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가는 날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도서관 앞에 내려 달라고 하자 자꾸 여기가 맞느냐고 물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렸는데, 도서관 경비가 온몸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 내일 오라는 말이었다. 그날은 콥트교의 크리스마스이자 이집트의 큰 공휴일이었다. 몸살로 룩소르 일정을 취소한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한 번 더 살이 쓸렸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일은 수도 없이 겪었지만, 그때 굳은 살이 박히지 않아 이번에도 또 아팠다. 다시 일정을 짰다. 다음 날은 여섯 시에 조식을 먹고 일곱 시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본 뒤 열 시 버스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엄마가 충분히 둘러볼 시간을 남겨 두고, 오후에는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사실 하루쯤 못 본다고 해서 여행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런데도 자꾸 꼬리가 생긴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안 보면 어떡하지.' 다음에 오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안달이 나는 건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애살은 이렇게 별일 아닌 일을 큰 결심처럼 만들고 안 해도 될 선택을 꼭 해야 할 일로 착각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또 몸과 일정을 밀어붙인다.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집트에서 맞이하는 아침. /김윤지
30년쯤 살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애살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앞으로 밀어내지도 않는다. 다만, 계속 같은 지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미 아팠던 자리, 이미 망설였던 선택 앞에 다시 세운다. 그리고 그 끝을 알면서도, 또다시 미련한 쪽을 고른다. 아마 다음에도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지점에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김윤지 하동군 근무

※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