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 금지령을 보류한다 [뉴스룸에서]


김선식 | 뉴콘텐츠부장
우리 집 10살, 11살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만화나 유튜브가 아니다. 로블록스다. 슬슬 사춘기로 넘어갈 나이지만 아주 가끔 애교 섞인 말투로 말할 때가 바로 ‘로블록스’를 더 하고 싶다고 조를 때다. 지난달 3일 로블록스를 차단해버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편지 공세를 퍼부은 러시아 어린이와 우리 집 어린이 마음은 같을 것이다. 나 또한 푸틴과 같은 마음이다. 로블록스 금지령을 내릴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로블록스는 온라인 공간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사람들과 교류하는 ‘메타버스’ 게임이다. 반짝 떴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메타버스를 10대들은 자주 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7일 발표한 ‘2025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를 보자. 10명 중 7명(70.7%)이 일주일에 한번은 메타버스 플랫폼·서비스를 이용한다. 에스엔에스(SNS·70.1%)나 생성형 인공지능(67.6%)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 10대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제페토 순이다.(2022년 기준)
이 글을 쓰고 있는 7일 오후 2시, 로블록스 1인칭 슈팅 게임인 ‘라이벌’ 게임엔 17만5천명이 참여하고 있다. 아이템을 훔쳐 달아나는 게임인 ‘브레인로트 훔치기’엔 21만7천명이 모여 있다. 둘 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즐겨 하는 게임이다. 로블록스는 2025년 3분기 기준 일일 평균 활성 사용자가 1억5150만명, ‘활성 체험 게임’만 700만개에 이른다.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 로블록스는 찜찜한 구석이 많다.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둘러 상대를 제거하는 폭력성, 아이템을 뺏는 놀이·괴롭힘의 모호한 경계도 문제지만, 최근 로블록스 금지를 심각하게 고민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극우·혐오 정치에 노출될 위험이다. 경향신문 보도와 유튜브 ‘애국대학’ 채널을 보면, ‘애국대학’은 지난해 11월과 12월 로블록스에서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집회 ‘윤 어게인 사이버 행진’ 게임을 열었다. ‘윤 어게인’ 손팻말, ‘이재명을 재판하라’ 깃발을 든 이용자들이 모여들었다. 배경음악은 ‘짱깨, 북괴, 짱깨, 북괴, 짱깨,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였다. 로블록스는 지난달 15일 이 게임을 약관 위반을 이유로 폐쇄했다.
게임은 사라졌지만 영상이 남았다. ‘윤 어게인 행진’ 로블록스 영상은 ‘로블록스 합법 계엄 1주년 집회’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릴스, ‘초등학생 사이에서 난리 난 로블록스 게임 시위’라는 제목의 유튜브 쇼츠 영상 등으로 재생산됐다. 비슷한 게임은 또 열렸다. 10여일 뒤 ‘자유로블당 창당위원회’는 로블록스에서 ‘윤 어게인 성탄절 집회’를 진행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10대들이 가장 자주 쓰는 에스엔에스, 인스타그램(87.1%)에서도 극우·혐오 콘텐츠를 보기 쉽다. 엑스(X)에서 극우 세력을 추적해 기록하는 ‘카운터스’가 지난달 31일 지목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폭거와 간첩들의 활동, 부정선거 증거 확보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고 ‘계엄령은 법적으로 위반되는 내용은 없다’는 글이다. 이 글은 ‘좋아요’ 1만6천회, 공유 2만2천회를 얻었다.

언젠가부터 한겨레 공식 인스타그램도 트위터, 페이스북보다 정치 기사 반응이 뜨겁다. 최근 두달간(11월8일~1월7일) 가장 많이 노출된 게시물은 ‘윤석열, 전두환 제치고 역대 최악 대통령’ 기사다. ‘좋아요’ 6724회, 공유 1만5천회를 기록했고, 총 84만3200명에게 노출됐다. 댓글(888개) 절반은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글이다. ‘내란이 아닌데 내란이라고 한다’며 답답해하거나 ‘최악이 아니라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실드’ 치는 댓글은 양반이다. ‘좌빨’ ‘중국 댓글 알바부대’ 같은 혐오 표현으로 다른 댓글을 비난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댓글을 보다 보면, 문제는 로블록스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상황이 이쯤 되면 로블록스 금지령은 무의미해 보인다. 어른들이 무관심한 사이 로블록스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게임과 에스엔에스를 금지할 순 있어도 시대의 공기를 막을 순 없다. 빗장 걸고 모른 척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들어갈 때다.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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