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꽃밭을 지키는 현용행 선생

오대혁 2026. 1. 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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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는 저마다 자기다운 꽃과 열매를 피워낸다. 겨울을 맞은 '삼달리 꽃밭에서'라는 정원에도 붉은 애기동백들과 토종 귤나무들이 산책길에 늘어섰고, 야자수와 올리브나무로 길을 이루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관광농원 만드는 줄 알았지요. 우리 집사람이 조그만 정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만들다 보니 정원이 커져 버렸죠. '삼달리 꽃밭에서'라는 정원 이름은 꽃밭에 와서 힐링하고 가시라고, 꽃길만 걸으시라는 콘셉트로 집사람이 떠올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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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꽃과 나무는 저마다 자기다운 꽃과 열매를 피워낸다. 겨울을 맞은 '삼달리 꽃밭에서'라는 정원에도 붉은 애기동백들과 토종 귤나무들이 산책길에 늘어섰고, 야자수와 올리브나무로 길을 이루었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우람하게 선 노송들의 바위 언덕을 넘어서면 수천 평에 달하는 꽃밭이 펼쳐진다. 논다랑이처럼 비탈진 꽃밭은 보라색·노란색 팬지꽃을 비롯해 층층이 온갖 꽃들로 수놓아져 멀리서 보면 무지개떡 백설기 같다. 거대한 자본으로 세워진 건물 주변을 장식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정원이나 각종 열대식물이나 과실나무들을 빽빽하게 심어놓은 하우스 식물원·관광농원과는 다르다. 꽃과 풀, 나무 하나하나 그 특성들을 살펴 소박하면서도 눈부신 조화를 빚어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1만평에 달하는 꽃밭 정원을 가꾸느라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을까. 친구는 서넛의 인부와 함께 45년 동안 꽃 농사를 지은 삼달리 노부부가 수 년 동안 손수 가꾸었다고 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관광농원 만드는 줄 알았지요. 우리 집사람이 조그만 정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만들다 보니 정원이 커져 버렸죠. '삼달리 꽃밭에서'라는 정원 이름은 꽃밭에 와서 힐링하고 가시라고, 꽃길만 걸으시라는 콘셉트로 집사람이 떠올린 겁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수더분한 웃음을 웃는 현용행 선생은 정원이 가꾸어진 내력을 흥미롭게 이야기했다. 자연을 경험하도록 설계된 산업 공간을 의미하는 관광농원이 아니라 가꾸지만 소유하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여 함께 즐기는 공간인 정원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꽃밭 입구에 지어진, 고대 유럽의 건축물 같은 카페를 손수 설계했노라고 했다. 빛과 물을 건축에 끌어들인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을 떠올리게 하는 카페는 조금 눈을 낮춰 바라보면 삼달리 바다의 수평선이 '거울 연못 정원'과 맞닿아 있고 그 뒤로 노출콘크리트 카페가 우람하게 서 있다. 고풍스러운 성을 연상케 하는 카페에 앉아 제주의 바람이 자아내는 바다와 연못 정원 위에 떠오르는 물비늘의 향연은 고요한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며 한참을 멍때리게 한다. 

일찍이 정약용은 한양의 집에서뿐만 아니라 귀양지에서도 정원을 가꾸며 선비의 품격을 갖추고 벗들과 즐기기를 좋아했다. 계절에 맞춰 풀과 나무를 기르는 노동은 자기 수양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살구꽃이 처음 피면,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여름 오이가 익으면, 초가을 서쪽 연못 연꽃 구경을 위해, 국화가 피면,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세모에 분매(盆梅)가 피면 벗들과 모여 즐겼다.(「죽란시사첩 서」) 철학자 한병철은 전 세계 디지털화 정보화의 여파로 땅의 질서, 지구의 질서에서 벗어나 땅이 주는 행복, 생명을 불어넣고 행복해지게 하는 대지의 힘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면서 "신이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꽃을 내려주셨다"(『생각의 음조』)라 말하며 늘 정원을 가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정원은 머물고 사유하고 돌보며, 벗들과 함께하는 사적 공간이요, '삼달리 꽃밭에서'라는 정원은 일반 대중이 찾아드는 공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렇지만 '삼달리 꽃밭'에서는 늘 경쟁과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적 정원과는 사뭇 다른 면모가 있어 좋다. 제주 꽃밭 장인이 제주 토박이 자본으로 손수 경영하며, 이웃들과 나누고 진정한 머묾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정원이라는 점에서 나는 괜히 자랑스럽다. 제주 꽃밭을 지키는 사람은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