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시론] 새해의 다짐- 김영선(전기연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

knnews 2026. 1. 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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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업무차 방문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한 웨이모(Waymo) 자율주행 택시는 가히 기술적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운전석이 텅 빈 채 복잡한 도심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는 모습은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했다. 주행 품질은 숙련된 운전자만큼이나 매끄러웠고, 갑작스러운 보행자의 돌출 행동이나 무단횡단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기민하게 대처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는 ‘완벽한 사생활의 보호’였다. 낯선 운전기사와의 어색한 침묵이나 불필요한 대화를 견딜 필요 없이,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 보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한 주요 제조사들이 AI를 접목한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야흐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인간의 인지 능력을 완벽히 대체하는 AI 기술의 총아(寵兒)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낙관론의 이면에는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차가운 경고장이 숨어 있다.

최근 들려온 샌프란시스코의 소식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내의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로 인해 서버와의 연결이 불안정해진 자율주행 택시 수십 대가 길 위에서 거대한 고철 덩어리처럼 멈춰 서고, 서로를 인식하지 못해 엉켜버리며 도시 전체에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다는 뉴스는 기술의 불완전함과 그에 비례하는 공포를 동시에 드러냈다.

우리는 기술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그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닥칠 고립감을 잊고 살곤 한다. 유명한 인문 건축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깊이 있게 짚어낸 바 있다.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 자를 사용하는 이 단어는, ‘공간(空間)’이나 ‘시간(時間)’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관계성’을 핵심 기초로 삼는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때보다 타인과의 ‘사이’를 어떻게 메우고 관계 맺느냐에 따라 그 존재 의미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즉, 인간은 물리적 존재를 넘어 관계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우리는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점점 더 좁고 폐쇄적인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고 있다. 유튜브 영상의 늪에 빠져 사건의 다각적인 면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타인과의 접점을 지워버린다.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파편화된 정보에 휩쓸려 타인을 향한 마녀사냥에 가담하기도 하며, 단편적인 정보 조각들을 습득해 스스로를 ‘인터넷 전문가’라 믿는 경우도 있다. 자율주행 택시 안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었지만 정전과 같은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는 ‘폐쇄된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독점하고 빠른 이동을 실현하는 것을 넘어, 타인과의 공간, 그리고 신기술과의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이맘때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고, 소유하고, 시작하겠다는 다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올 한 해는 무언가를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 맹목적으로 연결하는 것보다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 접속을 ‘끊어내고’, 나만을 고립시키는 디지털 편익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보자. 비워진 그 ‘사이’의 공간에서 비로소 잊고 지냈던 타인의 얼굴이 보이고, 기술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주체성이 다시금 살아날 것이다. 이번 새해가 그 ‘사이’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김영선(전기연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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