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조선업 ‘숙련공 확보’가 미래 패권 가른다

한겨레 2026. 1. 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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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기술 우위에 있고, 중국은 인건비 경쟁력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두고 불문율처럼 통했던 말이다. 울산의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이나 거제의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이 고부가가치 선박과 설계 역량으로 버티는 동안, 중국이 압도적인 노동비용 우위와 공격적인 설비 확장으로 수주 잔고를 채우던 시기가 있었다.

중국 부처들이 2024년에 발표한 '제조업 인력 발전 계획 가이드'를 보면, 조선·해양공학 분야의 인재 공급 부족이 2025년까지 26만6천명에 이르고 다수가 기술 숙련형 인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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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이 역전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숙련 인력이 지역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야간작업이 한창인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현장. 연합뉴스

“한국은 기술 우위에 있고, 중국은 인건비 경쟁력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두고 불문율처럼 통했던 말이다. 울산의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이나 거제의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이 고부가가치 선박과 설계 역량으로 버티는 동안, 중국이 압도적인 노동비용 우위와 공격적인 설비 확장으로 수주 잔고를 채우던 시기가 있었다. 2010년대가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력에서 중국을 더는 무시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예컨대 천연가스를 극저온(섭씨 -163도) 상태로 저장하고 운송하기 위한 멤브레인(격벽)을 사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 개발이 대표적이다. 국내 조선소들은 그동안 프랑스 가즈트랑스포르 에 테끄니가즈(GTT)의 화물창 기술에 의존해 왔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엘엔지 화물창 기술(KC-1, KC-2)로 프랑스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해서다. 이에 따라 지난 30년 동안 한국 조선소가 지급한 로열티 규모만 7조4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중국은 고유모델인 ‘비(B)형’(화물창 타입)을 통해 시장에서 품질을 인증받아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선가 대비 5~10%에 이르는 로열티를 아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기술 경쟁력을 키워왔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인력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중국의 ‘값싼 노동력’은 옛말이 됐고, 중국 청년들도 이른바 3디(3D·Difficult, Dirty, Dangerous)로 꼽히는 조선소 근무를 기피한다. 이제 중국 현장에서 “사람이 없다”는 비명은 단순한 머릿수 부족이 아니라, 높은 이탈률까지 포함해 산업을 지탱할 ‘숙련’의 결핍을 가리키는 절박한 신호다.

최신 중국 쪽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 부처들이 2024년에 발표한 ‘제조업 인력 발전 계획 가이드’를 보면, 조선·해양공학 분야의 인재 공급 부족이 2025년까지 26만6천명에 이르고 다수가 기술 숙련형 인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향후 5년간 신규로 필요한 고급 기술 인력은 약 8만5천명인데, 현재의 공급 능력으로는 그 절반인 4만5천명을 채우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현장에서는 조립공·용접공 부족률이 30%에 육박하고, 특히 젊은 고급 용접공의 씨가 말랐다는 진단이 반복된다. 여기에 친환경·인공지능 전환에 대응할 복합형 인재가 연간 6천 명씩 필요하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뒤를 잇는다.

중국 조선업은 애초에 ‘사람이 적은’ 산업이 아니었다. 2019년 합병으로 출범한 중국선박그룹(CSSC)은 자회사 147개에 고용 규모만 약 31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4만명 이상의 고숙련 엔지니어와 13명의 원사(중국 정부가 자국 석학들에게 부여하는 예우), 그리고 150개 이상의 대형 실험실과 국가급 연구개발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자원을 갖고도 “고급 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터져 나오는 이유는 조선업이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 집약 산업이 아니라, 친환경·지능화·데이터화가 결합된 복합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체질은 급변하는데 숙련공 공급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해안가 조선소는 1년차 용접공에게 연봉 2500만원 이상을 보장하지만, 노동자 관점에서는 높은 상하이 인근의 물가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중국 조선소는 숙련공 부족 속에서 비교적 높은 인건비에 비해 생산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위기 앞에서 중국이 택한 첫 번째 생존 전략은 ‘담대한 자동화’다. 중국 조선소들은 검증된 영역만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 자세, 높낮이가 불규칙한 환경의 용접처럼 숙련공의 손끝 감각에 의존하던 공정까지 센서와 딥러닝 기반 추적 기술을 총동원해 담대한 기획으로 기계화하고 있다. 좁은 공간을 집약적으로 써 공정의 복잡도를 높이기보다 넓은 부지를 활용해 공정 간 대기시간을 줄여 리드타임을 단축하려는 시도 역시 거세다. 향후 10년 내 노동력의 40%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공포에 대한 긴박한 대응이다. 숙련공이 빠져나가는 속도 앞에서 자동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중국 조선업계가 희망하는 수준의 자동화를 달성하고 숙련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중국의 두 번째 대응 축은 ‘공간 전략’의 재구성이다. 중국 내륙에는 여전히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많지만, 내륙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려고 조선소를 내륙으로 옮길 수는 없다. 이 공간 제약이 만드는 기회구조의 비대칭이 중국 조선업 인력난의 핵심이다. 중국의 해법은 중앙정부의 계획을 넘어 해안 산업도시의 ‘도시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대표적으로 상하이 북쪽에 위치한 장쑤성 난퉁시는 ‘인재강시(인재 확보가 강한 도시)’ 전략을 내걸고 지방 인재 관련 입법과 맞춤형 인재 유치, 정착 지원을 패키지로 제공한다. 단순히 “사람을 모셔온다”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해안 도시에 숙련 노동을 붙잡아 두기 위해 제도와 인프라를 까는 것이다.

교육 현장도 속도감 있게 변하고 있다. 상하이교통대학과 하얼빈공정대학은 선박해양공학 전공을 ‘강기획’(국가가 개입해 산업·기업을 계획하고 키우는 방식)에 포함해 학·석·박사 통합 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취업률 97~100%를 달성하고 있다. 영국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 엔지니어 자격 인증까지 추진하는 등, 중국은 지금 자동화와 도시 정책이라는 공간 전략을 결합해 숙련의 공백을 메우려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제도적 비교우위에 있다. 중국은 외국인 노동자 활용이 제한되지만, 한국은 국경을 열어 인력을 구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한국의 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되 숙련공을 축적하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2023년부터 도입했던 조선업 전용 비전문취업비자(E-9) 쿼터의 폐지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여기에는 새로 충원하는 일반기능인력 비자(E-7-3) 인원을 전체 조선업 인력의 30% 수준까지 할당할 수 있기 때문에 “E-9 쿼터가 과거처럼 절박한 수단은 아니”라는 현장의 인식도 깔려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E-7-3, E-9 비자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큰 차이가 없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중소기업 70%)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요건이 지난해부터 폐지되면서다. 이에 따라 E-7-3 비자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2515만원)과 E-9 노동자의 평균 임금(2590만 원)을 비교하면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E-9이 높아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업종과 근무 지역을 한정해 노동력 이탈을 막는 데 더 유리하다는 이유로 E-7-3를 선호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교육 훈련을 거쳐야 하고 지정된 사업장·직무에서만 일할 수 있는 E-7-3 비자를 취득할 유인이 전혀 없어진 것이다.

‘숙련기능인력’ 점수제(E-7-4) 역시 모순적이다. 원래 E-9 노동자가 4년 이상 경력을 쌓아 장기 체류로 전환하도록 설계됐지만, 연봉 하한선은 2600만원으로 E-9 대비 상승폭이 고작 10만원(+0.4%)에 불과하다. 제도는 ‘장기 체류’와 ‘숙련’을 말하지만, 시장 신호(임금)는 주지 않고 진입장벽만 높인 결과, E-7-4 쿼터의 절반 이상(57%)이 소진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내국인과의 임금 차이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숙련에 대한 고려가 부재한 게 더 문제다.

이러한 ‘숙련 노동력의 감소’는 곧장 지역 경제 위기로 전이된다. 울산과 경남 거제 같은 산업도시는 조선업이 만들어낸 중산층과 자영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지역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는 늘어나는데 돈은 돌지 않는다”는 불만이 비등한다. 외국 인력이 단기 순환형으로 머물다 떠나면서 생활비를 지역에서 쓰지 않고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지역 소상공인들의 호소는 단순한 인종주의나 배타성이라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지역 내 경제 순환 고리가 끊어졌다는 위기 신호다.

한국은 이주 노동자들을 잠시 스쳐가는 뜨내기로 방치하고 있다. 가족을 데려와서 아이를 키우거나 소비를 하는 ‘정주형 숙련공’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다면 산업 경쟁력도 지역 상권도 온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해법은 외국 인력을 늘리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 조선업 인력정책은 노동력 충원을 넘어 지역사회 통합과 지역 균형발전의 정책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핵심은 외국 인력이든 내국인이든 현장을 떠나지 않고 숙련을 쌓게 만드는 것이다. E-7-3 인력에게 명확한 숙련 프리미엄을 보장하고, E-7-4 전환을 통해 가족 동반과 주거 안정을 지원하여 그들을 지역의 소비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원청 정규직 채용 확대와 원하청 임금 격차 완화를 통해 내국인 노동자가 진입할 수 있는 숙련 인력 양성 체계 또한 복원해야 한다. 정규직 확대와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생산성과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묶는 산업전략이다.

조선업 패권은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중국은 숙련 인력 부족이라는 위기 앞에서 자동화를 공간혁신으로 밀어붙이며, 도시의 정책 역량까지 총동원해 숙련공을 붙잡으려 한다. 반대로 한국은 외국 인력을 들일 수 있는데도 숙련 노동자를 남기지 못하게 되는 방식으로 제도와 조직을 설계한다면, 이는 스스로 비교우위를 깎아먹는 셈이다.

조선업 패권은 단순히 수주 점유율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화의 조건과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된다. 인력 관점에서는 숙련 인력 양성 체계를 누가 더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 조선업이 역전의 기회를 여전히 갖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다. 숙련 인력을 축적할 수 있는 제도와 이를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잠재력 덕분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가능성을 실제 전략으로 선택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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