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도 반한 '경주의 맛', 따뜻할 때 먹으니 입에 착 감기네
[전갑남 기자]
천 년의 세월이 둥근 능선이 되어 잠든 곳, 경주 대릉원의 산책로는 유독 부드러웠다. 낮게 내려앉은 오후의 햇살이 고분의 곡선을 따라 흐르며 나른한 평화를 빚어내고 있었다.
나는 흙길의 부드러움에 습관처럼 조여 매던 신발 끈을 풀고 맨발로 그 길 위에 서려다, 이내 찰나의 멈칫거림으로 발을 멈추었다. 이곳은 단순히 걷기 좋은 산책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점에 섰던 왕들이 침묵으로 잠든 신성한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무덤 곁을 맨발로 걷는다는 것이 혹여 고결한 안식을 방해하는 결례는 아닐지, 예(禮)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지 하는 경외심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신발을 다시 고쳐 신으며 나는 생각했다. 비록 맨발로 대지의 온기를 직접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정갈하게 매듭지어진 무게만큼 왕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 또한 경주를 여행하는 법이라고! 나는 그렇게 마음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고분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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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릉원의 기개를 담은 듯, 황금빛 상자 위에 역동적으로 그려진 천마도가 경주빵의 품격을 더한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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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도를 상징하는 그림이 빵 상자에 등장하여 친근감이 느껴졌다. |
| ⓒ 전갑남 |
그때 우리 눈앞에 정갈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빵집이 나타났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경주빵'이었다.
상자를 받아 든 순간, 대릉원 앞이라 그런지 포장에 선명하게 그려진 천마도가 유독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하늘을 나는 말의 역동적인 기개가 종이 상자 위에서도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 때 먹었던 그 빵이, 지금도 경주의 명품으로 이어지고 있군. 참 반갑다."
나의 혼잣말에 함께한 아내가 가격표를 보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근데 한 상자에 24,000원이네. 하나에 1,200원인 셈인가? 생각보다 꽤 비싸네."
사실 황남빵과 경주빵은 그 뿌리가 같다. 1939년 고(故) 최영화 옹이 처음 빚어내기 시작한 그 고집스러운 맛이 시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며 '황남빵'은 특정 가문의 고유 브랜드 명칭이 되었고, '경주빵'은 해당 종류의 빵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름은 나뉘었을지언정, 천년 고도의 자부심을 팥소처럼 꽉 채워 넣은 그 정성만큼은 결코 나뉘지 않았을 터였다.
숙련된 손끝이 빚어낸 무늬 없는 무늬
가게 안쪽에서는 빵을 빚는 장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반죽을 손바닥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 리드미컬하게 손목을 돌려가며 팥소를 얹는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교한 춤사위 같았다.
동그랗게 빚어진 반죽 위로 정성스레 찍힌 빗살무늬 도장은 유물의 문양처럼 고풍스러웠다. 그것은 변치 않는 맛을 지켜오겠다는 장인의 낙관(落款)이었다.
수작업으로 빚어져 오븐에서 막 꺼낸 빵은 생명력이 넘쳤다. 겉면은 아주 얇고 섬세했으나, 그 속에 꽉 찬 소는 촉촉함을 머금은 채 단단했다. 고운 밀가루와 붉은 팥이 만들어낸 조화는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맛이 입에 착 감겼다. 막 구워내어 따뜻할 때 먹으니 그 진가가 온전히 발휘되었다.
80년의 비결, 혀끝으로 전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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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얇은 피 속에 빈틈없이 들어찬 붉은 팥소. 이것이 바로 시진핑 주석도 감탄하게 한 경주의 묵직한 달콤함이다. |
| ⓒ 전갑남 |
몇 년 전, 포르투갈 여행 때 리스본 벨렝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떠올리게 했다. 수도사들이 수녀복에 풀을 먹이기 위해 남은 달걀노른자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에그타르트(파스텔 드 나타). 그 수도원의 정성이 전 세계 여행자들이 잊지 못하는 맛이 된 것처럼, 경주의 빵 역시 고집스러운 세월을 견뎌낸 유산으로 읽혔다.
세계로 뻗어가는 천 년의 맛이 되어라
십원빵이 경주의 상징을 즐거운 유희로 풀어낸 '오늘의 맛'이라면, 황남빵과 경주빵은 경주의 유산을 묵직하게 담아낸 '영원의 맛'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에그타르트가 세계인을 사로잡은 비결은 비단 멋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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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로 비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신뢰'. 철저한 위생 관리를 증명하는 HACCP 인증 마크가 선명하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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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경주빵!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으면 좋겠다. |
| ⓒ 전갑남 |
우리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유행을 좇느라 놓칠 뻔했던 '진짜'의 맛이 몸 안 가득 퍼져나갔다. 대릉원의 고분이 주는 묵직한 가르침과 80년의 시간이 빚어낸 달콤함이 어우러진 경주의 오후. 언젠가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가 그러하듯, 경주의 맛이 세계인의 입끝에서 영원히 기억될 고귀한 명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부드러운 능선이 되어 잠든 곳, 그리고 지금 우리를 "일어나라!" 다시 일깨우는 곳! 그 신라 대릉원 고분들 앞에서 느꼈던 경건한 경외심이 혀끝의 달콤함과 만나 가슴 깊은 곳에 여운으로 짙게 남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기자의 말] 2025 경주 APEC에서 이방의 국빈들마저 매료시킨 경주빵의 저력을 목격했습니다. 유행을 좇는 '오늘의 맛'을 넘어, 80년 고집으로 지켜온 '영원의 맛'이 이제 우리를 다시 일깨우는 새로운 힘이 되기를, 그리하여 세계적 명품으로 당당히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행기에 담았습니다. 지난 달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경북 일원을 여행하고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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