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거래적 동맹관, 對中 결별 압박·안보 불안 이중고 안겨" [2026 신년기획, 신냉전시대 석학의 제언]
新냉전시대는 기술·산업별로 갈라진 '패치워크 세계'
단순 편가르기보다 美 신뢰쌓고 中 경제관계 관리해야
트럼프의 '동맹국=거래상대' 한미동맹 시험대 올려놔
방위비 분담 등 기습 결정 피하기 위해 지속 소통 필수
북핵 문제에서 명확한 확장억제 메시지 등 내비쳐야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며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는 냉전식 질서가 아니라, 산업과 기술별로 규칙이 달라지는 '신냉전형 패치워크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패치워크 질서는 세계가 하나의 규칙이나 두 개의 진영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고 분야·국가·기술별로 서로 다른 규칙과 관계가 이어 붙여진 상태를 말한다.

대니얼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 석좌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사진)은 4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지정학이 경제를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각국은 선택적 디커플링과 헤지를 병행하며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고위 외교관을 지닌 러셀 연구원은 이런 구조적 변화가 동맹국인 한국에는 특히 큰 도전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한국은 첨단 기술과 제조업 강국이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노출이 커 미중 사이에서 단순한 편가르기를 선택하기 어렵다"며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 동맹 관리와 북핵 위협까지 겹치며 한미동맹은 전략적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 첫해를 어떻게 평가하나. '아메리카 퍼스트' 접근법은 미국과 국제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첫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 외교정책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국 이익 중심의 거래적 접근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며, 미국의 리더십에서 미국의 강압적 지렛대 행사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025년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이다. 이 문서는 전략 문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미국의 목적을 부(富), '핵심 이익', 거래적 상호주의로 좁히고 동맹을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조건부 거래 대상으로 취급하며 가치·제도·장기적 동맹 관리의 중요성은 축소했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첫째,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운다. 동맹국들은 이견 자체는 감내할 수 있지만 예측 불가능성, 신뢰 상실, 압박 전술에는 취약하다.
둘째, '아메리카 퍼스트' 프레임은 양보를 끌어내는 것과 국가 이익을 증진하는 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이 단기 성과를 내는 데 맞춰질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때로는 저급해진다. 국제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파트너들의 '헤지(보험적 대응)'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일관되게 행동하고 약속을 존중하며 제도를 지키고 장기 전략을 국내 정치적 연출과 구분할 것이라는 확신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는 더 거래적이고, 더 분절됐으며 경쟁국들이 활용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을 1년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 휴전을 깨뜨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은 무엇이며, 향후 1년간 미중 무역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이번 중단은 해결이 아니라 '타임아웃'이다. 양측이 다음 라운드를 대비해 각자의 입지를 강화하는 시간일 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 국빈방문을 성사시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합의를 시도하기 위해 휴전을 원한다. 시 주석은 베이징의 입지를 강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휴전을 원한다. 이 휴전이 취약한 이유는 관세가 본질적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쟁은 기술·안보·전략적 우위에 관한 것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 본능은 지속 가능한 합의가 아니라 강압적 지렛대 행사에 가깝다. 문제는 베이징이 이에 저항하고 보복할 만큼 충분히 강하고 영리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봄철 베이징 방문 이전에도 휴전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은 여럿 존재한다. 대만 위기나 심각한 군사적 사건은 새로운 제재나 수출통제를 촉발해 무역전쟁 완화를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행 및 검증을 둘러싼 분쟁 역시 합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기술통제는 또 다른 도화선이다. 워싱턴은 하룻밤 사이 규제를 강화할 수 있고 베이징은 규제 압박, 시장접근 제한, 인허가, 핵심 투입재를 활용한 다양한 보복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1년간은 포괄적 합의보다는 제한적이고 전술적인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단기 이익을 챙기면서 최대한의 행동의 자유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는 수명이 짧은 합의를 낳게 된다.
―'신(新)냉전'은 글로벌 경제블록을 어떻게 재편할 것으로 보나.
▲'신냉전'이라는 비유는 경고 신호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2026년을 설명하는 지도(map)로는 부적절하다.

―미국은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은 여전히 막대한 자산과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맹망, 깊은 자본시장, 세계적 혁신역량, 전 세계에 힘을 투사할 수 있는 군사력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미국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거래적·강압적·자기중심적인 외교로 장기적 이점을 스스로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취약성은 대부분 자초한 것이다.
첫째는 신뢰성이다. 약속이 조건부이거나 되돌릴 수 있어 보일 때, 파트너들은 헤지하고 다변화한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지렛대와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둘째는 변동성이다. 압박 전술과 기습적 조치는 양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신뢰를 훼손하고 위기 시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는 전략적 단기주의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종종 양보를 끌어내는 것과 국가 이익을 혼동하며 장기적 영향력보다 단기 성과를 우대한다. 마지막으로 동맹 리더십의 약화다. 미국의 독보적 강점은 타인을 결집시키는 능력이었는데 파트너를 전략자산이 아닌 압박 대상으로 취급할수록 분열을 키우고 경쟁국들이 이를 활용하기 쉽게 만든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필요가 없다. 미국이 스스로 동맹국과 중립국들에 신뢰할 수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인내심 있는 리더십에 더 이상 헌신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중국은 이를 활용해 국제기구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금융과 인프라를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예측 가능성과 투자를 원하는 국가들에 대안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미 관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한미동맹은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동맹 중 하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 왔고, 한국이 글로벌 경제·기술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의 위험은 이해관계의 부재가 아니라 변동성과 전략적 압박이다. 첫째, 과도하게 거래적인 동맹 관리의 문제다. 워싱턴이 동맹을 자주 재협상되는 비즈니스 거래로 취급할 때, 특히 방위비 분담과 '상호주의'를 강조할 때, 예측 가능성에 의존하는 관계에 불확실성을 준다. 이는 억지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한국은 미중 간 압박에 취약하다. 한국은 기술·제조 강국이며 중국과의 경제적 노출이 크다. 트럼프의 요구에 따라 단순히 디커플링할 수는 없다. 베이징 역시 전략적 선택에 대해 한국에 보복하기 위해 경제적 강압을 사용할 의지를 보여 왔다. 문제는 한국이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받아 기업에 피해를 주면서도 보복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셋째, 북한의 위협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김정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역량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긴밀한 공조, 신뢰할 수 있는 확장억제, 명확한 메시지가 필수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딜'에 집착하고, 헤드라인용 성과를 위해 동맹의 이익이나 어렵게 쌓은 제약을 거래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은 우려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서로 자주 충분히 상의하고, 갑작스러운 결정을 피하며, 북한을 억제할 힘과 위기에 버틸 능력을 함께 더 강화해야 한다.
prid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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