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꿈꾸던 광부, 세계적 화가로…장-마리 해슬리 회고전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18일까지

프랑스 출신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작가 장-마리 해슬리(1939~2024)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회고전 '그린다는 건 말야 : 장-마리 해슬리'전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 1관에서 18일까지 열린다.
해슬리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광산촌에서 태어나 14세부터 광부로 살다 갱도에서 병을 얻어 병상에 눕게 됐고, 그곳에서 앙리 페브르의 '반 고흐의 생애'(1957)를 읽으며 미술의 세계에 빠졌다. 군 복무 중 뮌헨의 한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실제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는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반 고흐 등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模寫)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해슬리는 채굴 장비 설계 기술을 배우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 기술을 밑천 삼아 파리로 떠나 여러 작가와 교류했고, 이후 1967년에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루이즈 부르주아, 앤디 워홀, 도널드 저드, 백남준, 장미셸 바스키아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린다는 건 말야. 그러므로 그나마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거야."
이번 전시는 해슬리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다.
그의 작품은 험난한 현실을 예술로 건너온 한 인간의 궤적을 담아내며, 회화가 개인을 구원하고 세계를 견디게 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그의 삶과 예술적 도전과 성취를 한자리에서 조명한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등 걸작을 따라 그린 초기 작품과 파리·뉴욕 시기의 작업, 말년 병상에서 제작한 소품들을 선보인다.

1980년 작 '망각의 문'은 아치형 창을 연상시키는 캔버스에 강렬한 원색의 선들로 화면 전체를 빽빽하게 채운 작품이다. 화면 속 형상들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은 채 불안정한 상태로 머문다. 제목이 암시하듯 하나의 통로이자 경계로 읽힌다.

2부에서는 추상적이며 서정적인 '우주'와 '자연'을 주제로 한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우주 연작은 뉴욕 미술계의 주류 흐름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만의 표현주의적 언어를 구축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염소자리Ⅰ'은 별자리가 지닌 에너지가 응축돼 발산되는 순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굵고 거친 붓놀림이 캔버스에 소용돌이치는 형상인데,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장하는 나선형 회오리가 연상된다.

우주와 자연을 탐구하던 해슬리는 이후 시선을 '인간'으로 돌린다. 자기 표현주의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기도취적일 수 있다는 자각에서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유행한 인체 알파벳 그림에서 착안해, 인간의 신체를 알파벳 형태의 기호로 표현한 '인체 알파벳' 연작을 선보인다.

더 나아가 인체를 파편적으로 해체하고 기하학적 그리드로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간다.
1999년 작 '파편들'은 인간의 신체를 퍼즐처럼 화면에 배치한 작품으로, 시간이 흐르며 흩어지고 조각난 기억과 과거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앞서 지난 2013년 6월 서울 중구 소공로 금산갤러리(대표:황달성)에서 '장-마리 해슬리(Jean-Marie Haesslé - Color in Abstraction)'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 2월 고려대학교박물관 주최로 '장-마리 해슬리(Jean-Marie Haesslé - The Color of Life)'전을 개최했다. 2022년 6월 전북도립미술관이 '장-마리 해슬리 - 소호 너머 소호(Jean-Marie Haesslé - Paris, New York)'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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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cinspa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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