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병대가 계급 하사한 ‘한국전쟁 전설’ 軍馬 레클리스 상사를 아시나요[정충신의 밀리터리카페]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한국전쟁의 전설이 돼 계급까지 하사받은 군마 레클리스 하사와 한국군 최초의 기병대대가 재조명받고 있다.
12지 동물 가운데 말은 군(軍)과 가장 밀접한 동물이다. 광복 후 변변한 무기와 장비가 없던 한국군은 말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기병대대는 6·25전쟁 초기 눈부신 역할을 한다.
1948년 창설된 국군은 무기체계와 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그 중에서도 운송수단 부족의 난제에 직면했다.
한국군은 무기를 도입하고 부대를 편성하는 차원을 넘어 전장에서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킬 수단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앞섰다.

그해 12월 10일 창설된 국군 최초의 기계화부대 ‘독립기갑연대’가 창설됐다. 독립기갑연대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M8 장갑차와 트럭 등을 주축으로 했지만 여기에 군마(軍馬)를 활용한 기병 전력이 함께 편성된 것이다.
현대식 기갑·기계화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군마는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실제로 1948년 11월 30일 제정된 국군조직법을 보면 기병은 보병·포병·공병·헌병 등과 함께 육군 병종 중 하나였다.
독립기갑연대에 속한 기병대대는 이름 그대로 말을 타고 기동하며 싸우는 부대였다. 말로 운반한 기관총과 박격포로 적을 타격하고, 때로는 용맹하게 돌격전 기동전을 전개했다.
대대 창설 당시 350마리의 말이 있었고, 최대 600마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6·25전쟁은 기병과 군마를 전장으로 끌어냈다. 기병대대는 전쟁이 발발하자 의정부로 출동해 수색작전을 전개한 뒤 한강방어전에 합류했다.
우수한 기동력을 활용해 적 동향을 정찰하던 기병들은 한강을 몰래 건넌 북한군 수백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며 적의 남침을 지연시키는 데 큰 힘을 보탰다.
7월 11일에는 충남 공주에서 북한군 6사단 1개 대대를 섬멸하고, 7월 14일에는 북한군 공격을 받던 미 63포병대대 병력을 구출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낙동강방어전에서 혈전을 치른 끝에 대부분의 군마를 잃고, 사실상 일반 보병으로 바뀌게 된다.
부대를 이끌던 기병대대장 장철부 중령(추서계급)은 1950년 8월 4일 청송전투 중 중상을 입자 “포로가 되는 수치를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병대대는 짧지만 굵직한 궤적을 남기며 군마가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말은 전투뿐만 아니라 수송 임무에도 투입됐다. 미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Reckless)’가 대표적인 사례다.
레클리스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81mm 박격포 소대에서,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 전설적인 군마였다.
1953년 3월 26일, 중공군은 현재 경기도 연천 일대에 해당하는 네바다 전초기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다. 미 해병대와 한국군이 이에 맞섰고, 전투는 5일 동안 이어졌다. 이 치열한 전투에서 미군과 한국군 약 1000명, 중공군 2000~3000명이 사상당하는 큰 희생이 따랐다.
이때 레클리스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전방에는 박격포탄을, 후방에는 부상병을 싣고 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포탄 파편에 맞아 다쳐도 임무를 멈추지 않았고,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 탄약이 부족해 끊길 뻔한 박격포 사격을 이어 나갔다.
레클리스의 이런 활약은 중공군의 거센 공격을 막아 내고 방어선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참전용사인 헤럴드 워틀리 예비역 병장은 2013년 레클리스 동상 제막식에서 “새벽 연기와 화염 속에서 말의 실루엣이 보였고, 나는 그게 정말 말인지 의심했다. 그게 바로 레클리스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휴전 후 레클리스는 1954년 앤드루 기어 중령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간 그 해 4월 10일 미 해병대에서 하사 계급을 공식적으로 받았고, 1957년 6월 12일에는 상사로 진급해 미 해병대 역사상 동물이 상사 계급을 받은 첫 사례로 남았다.
그후 레클리스는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턴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며 네 마리의 망아지를 낳기도 했지만, 전쟁 휴유증으로 1968년 5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군인 예우로 장례했다.
레클리스에 대한 미군의 예우는 사망 후에도 계속 되었다. 2013년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기념해 버지니아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탄약을 지고 전장을 누비는 동상 설치 이후 미 전역에 기념비 5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는 2018년, 네바다 전초기지 전투 현장 인근 연천 고랑포 역사공원에 동상이 들어섰고, 제주에도 기념 동상이 있다.
‘레클리스’란 미 해병대 제5연대가 사용한 무전 호출부호로 ‘아침 해’를 의미하지만, 미 해병대는 “무모하리만치 용감하다”는 뜻으로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다.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마로 조련된 레클리스는 1952년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임무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차량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을 달리며 포탄과 탄약을 실어 날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다친 병사들을 데리고 복귀했다. 다른 말과 달리 영리해서 한두 번 동행하면 혼자 보내도 길을 찾아냈다고 한다. 특히 1953년 미 해병대와 중공군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사람의 도움 없이 하루 수차례 위험한 보급로를 오르내리며 중화기를 운용하던 해병대에 결정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전후 미국으로 건너가 ‘전쟁영웅’ 대우를 받았다. 전후 육군이 본격적인 기계화·기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군마는 전장의 중심에서 물러났지만, 그 경험과 상징은 부대 정체성 속에 남았다.

오늘날에도 육군 곳곳에는 ‘말’을 부대 상징으로 간직한 부대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부대가 육군9보병사단. 애칭 ‘백마부대’는 6·25전쟁 당시 9사단이 이뤄낸 백마고지 전투 승리에서 비롯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395고지를 놓고 벌어졌다.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도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했다. 아군과 적군의 포탄 세례로 산등이 하얗게 벗겨진 395고지는 백마고지란 새 이름을 얻었다. 하늘에서 보면 흰말이 누워 있는 형상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유래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백마고지 전투 승리를 기념해 사단에 ‘상승백마(常勝白馬)’ 휘호를 하사했고, 이후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다.
이 밖에 말을 활용한 애칭으로는 철마(鐵馬)부대, 천마(天馬)부대, 용마(龍馬)부대 등이 있다. 이처럼 말은 더 이상 전장을 누비지 않지만 부대 애칭 속에서 육군의 정신과 전통을 깨우는 존재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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