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한 날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 시인 2026. 1. 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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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홍재현의 ‘싫어의 무게’
어린이가 들어야 하는
어른보다 더 큰 짐

싫어의 무게

아빠가 "회사 가기 싫다"
하거나

엄마가 "밥하기 싫다"
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형이 "학교 가기 싫어"
한마디만 하면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엄마는 선생님, 친구들, 상담소
분주히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아빠는 수많은 질문을 삼킨 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는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집이 된다.

나는 방문도 못 열겠다.

「시와 소금」, 시와소금, 2023년 여름호.

어떤 회사원이든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귀찮거나 짜증스럽거나 뭐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주부라도 일손을 놓고 며칠 쉬고 싶을 때가 왜 없을 것인가.

하지만 학생은 다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꾀병이라도 부리고 싶을 때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간 소동이 벌어진다. 그때가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나 시험 기간일 때면? 전교 1ㆍ2등을 다투는 수재거나 그때까지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모범생이라면?

엄마는 아이의 내면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생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고 상담소에도 연락을 해본다. 아빠도 고민에 휩싸여 끊었던 담배까지 찾는다. 집안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사진 | 시와소금편집부 제공] 

그런데 이런 경우, 사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연락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아닐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이 나라에서 학교마다 상담 시스템을 잘 갖춰놓으면 자살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이라고 왜 내가 공부해야 하는지, 회의에 휩싸이지 말란 법이 있는가. 의사가 돼라, 판사가 돼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인술이란 것이 뭔지, 법철학이 왜 필요한지 말해주는 어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네가 지금 공부하는 거라고 말해주자. 부모가 아이의 영어와 수학 성적에 노심초사할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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