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ick]평생 공부해도 ‘노답 영어’?...권력과 존재감 부각 수단이 된 영어

2026. 1. 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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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대졸 직장인인 경우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까지 총 12년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요즘은 그 시작이 더 빨라졌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영어유치원 출신도 많다. 무엇이든 10년 투자하면 그 성과는 눈에 보이고, 발전의 속도 또한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어는 다르다. 지겨울 정도로 실력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 영어 모어 사용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약 5억 명뿐이지만, 세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국가는 58개국에 약 23억 명이나 된다. 영어는 UN 등 각 국제기구의 공용어로 특히 학문 언어로서 위상도 확고하다. 과학, 경영, 경제, 심리학 등의 이론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에서 만들어졌고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권위 있는 과학저널 역시 미국과 영국에서 창간되었다. 또한 인터넷, 군사, 우주과학, AI 등 첨단 분야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도 영어의 영향력은 세계의 그 어떤 언어보다 압도적이다.

#2 시장 조사기관 ‘테크나비오Technavio’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온라인 언어학습 시장은 2029년 815억 5,000만 달러, 약 12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이처럼 글로벌 온라인 언어학습 시장의 빠른 성장 이유로 비용 절감, 학습 시간 및 장소의 유연성, AI 기반 맞춤형 교육 등을 뽑았다. 특히 AI 등 빅테크 기업과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해 다국어, 그중 영어 구사 능력을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며, 온라인 언어학습 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4세 고시’, 영유아학원 입학 위한 레벨 테스트

한국인들 대부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까지 총 12년을 배우지만 영어가 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 영어 교육이 대입 시험을 위한 공부이기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언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쓰는 것이다. 많이 말하고, 읽고, 들으면 입과 귀가 열리고 트인다.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해외여행이나 출장길, 첫날은 간단한 영어도 들리지 않고, 햄버거 하나 주문을 못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는 헤매던 주문도 나름 ‘술술 하게’ 된다. 바로 그 짧은 기간에도 오로지 영어로만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해외 연수, 인턴십, 여행 등의 과정이 대학생들에게 필수처럼 되었다. 현재, 영어는 사회나 직장생활에서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영어 사교육의 열기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 혹시 ‘7세 고시’를 알고 있는지? 이는 영어유치원에서 실시하는 레벨 테스트를 뜻한다. 그런데 이 말 역시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4세 고시’이다. 즉 영유아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4세 된 ‘아기’가 치르는 레벨 테스트이다. 2025년 10월 20일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영유아 대상 사교육을 조장하는 영어유치원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미취학 아동의 영어 교습 제한’ 법안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냈다.

법안은 36개월 미만 영유아에 대해서는 교과 연계 영어 교습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까지는 하루에 교습 시간을 40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영어학원을 마치 유치원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 교육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세 고시’로 불리는 레벨 테스트를 비롯해 선행학습, 학원 운영시간 등에 대한 규제 관련 대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초등학생 어학연수 총액이 958억 원

2013년 우리나라의 영어 사교육비 규모는 6조 4,602억 원으로, 2024년에는 약 10조 원에 달했다. 최근에는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특히 성장했는데 5세 아동의 월평균 영어 학원비는 154만 5,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교육부가 2025년 3월 공개한 ‘2024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를 보면, 만 6세 미만 취학 전 영유아 가구가 2024년 7~9월 3개월간 지출한 사교육비는 8,154억 원이었다. 이는 연간 3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자세히 살펴보자. 초등학교 입학 전인 만 5세 아동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 5,000원으로 초등학교 1학년 42만 9,000원보다 많았다. 특히 영유아 사교육은 거의 ‘영어’에 집중되어 초중고 학생들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사교육 유아 영어에 지출하는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 4,000원으로, 2024년 고등학생의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 32만 원보다 많았다.

특히 이런 사교육비는 나이가 어릴수록 비용이 더 증가한다. 통계를 보면 월평균 사교육비는 영어학원 유치부 154만 5,000원, 놀이학원 116만 7,000원, 예능학원 78만 3,000원 순이다. 월평균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큰 서울의 주요 학군지에선 유치원처럼 종일반을 운영하면서도 이름만 영어학원인 곳들도 많다. 특히 서울 강남구와 양천구 목동 등 사교육열기가 높은 지역 내의 영어유치원은 유아 1인당 월 수강료가 200만 원대로 매우 높다. 또 주목할 부분은 이처럼 과도한 영어 사교육비 외에 이른바 ‘어학연수비’의 증가이다. 영어권 현지에서 영어와 친숙해지기 위해 외국에서 약 한 달 정도 자고, 먹고, 여행하고, 공부하고, 견학하며 진행되는 어학연수비는 총 1,619억 원에 달했다. 이 중 중학생 어학연수비가 527억 원으로 전년 대비 451.8% 대폭 증가했고, 규모로는 초등학생 어학연수 총액이 958억 원으로 제일 많았다.

현대 사회에서 영어에 능통한 것은 일종의 권력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25 영어학습 관련 인식조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응답자 대부분이 ‘영어 능력’의 중요성에 공감하나, 실제 영어 학습에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설문 대상자들은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외국어 능력으로 단연 ‘영어’를 꼽았다. 그 비율은 무려 96.2%이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에는 평균 66.5%가 동의했고 이를 세대별로 보면 10대 74.5%, 20대 68%, 30대 63%, 40대 62.5%, 50대 64.5%로 나타났다. 이는 영어가 외국어가 아닌 사회, 직장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으로 여긴다는 인식이다.

물론 ‘직장에서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에도 79.8%가 동의했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기회가 더 많다’는 88.5%, ‘능력과는 별개로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에 86.1%가 동의한 점도 눈에 띈다. 즉 영어 실력이 직무 능력의 절대 평가 기준은 아니지만 사회나 직장에서 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라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현대 사회에서 영어에 능통한 것은 일종의 권력이다’라는 설문에 평균 47.8%가 동의했다. 이를 세대별로 보면 10대 53.5%, 20대 56%, 30대 50.5%, 40대 41%, 50대 38%로 10~30대들의 동의율이 높았다.

주변의 영어 실력이 유창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은 ‘능력 있어 보인다’가 69.4%, ‘부럽다’가 63.8%, ‘똑똑해 보인다’가 62.7%로 나타나 영어 실력자에 대한 인식이 부러움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응답자 대부분은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해 ‘왕초보, 초보’라 답했다. 그러면서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울렁증을 겪는 편’ 49.1%, ‘영어에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응답도 40.3%로 높게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영어 학습이 필요하다’에 76.6%가 동의했다.

영어 실력 향상 이유로는 ‘영어를 잘하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가 52.1%, ‘미래 준비에 도움’이 38.5%, ‘영어회화 능력이 개인 경쟁력’이라고 38.4%가 꼽았다. 그렇지만 ‘현재 영어 학습 실천’에는 32.2%만이 응답해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었다. 현재 영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에는 ‘정기적으로 공부하기 어렵다’가 37.0%,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어서’가 35.7%, ‘해도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라는 이유도 31.9%나 되었다. 이 외에 ‘영어 공부를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21.7%, ‘영어를 못해도 상관없다’는 이유도 10.6%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영어 학습 방법은 주로 무엇일까. 영어 학습수단으로는 ‘유튜브 등의 콘텐츠’ 37.6%, ‘영어 학습 앱’이 37.3%로 유튜브 콘텐츠나 영어 학습 앱처럼 반복 학습이 가능하고 실전 감각을 키울 수 있는 학습 수단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물론 영어 실력이 없다고 당장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생업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 조건’임은 틀림없다. 아직까지 세상은 영어권 국가들의 주도권 시대이다. 즉 그들이 만든 이른바 ‘표준’이라는 것에 해당되는 모든 것은 ‘영어로만’ 해석되고, 이해되고, 말하고,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10년 동안 공부해 왔지만 하루에 한 시간씩 투자해서 공부한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매일 묵묵히 끈기 있게 듣고, 말하고, 읽어야 한다.

[ 권이현(라이프컬처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픽사베이,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2호(26.01.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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