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반드시 해야 할 다섯가지는? 법의학자가 10년째 유언 쓰며 깨달은 것
”내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과 손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장하지 말라. 화장 후에는 보령 관촌에 뿌려라. 문학상 같은 건 만들지 말고 제사 대신 가족끼리 식사나 해라. 나는 이 세상 여한 없이 살다 간다.“
연작 소설 '관촌수필'로 유명한 작가 이문구(1941~2003). 그가 2003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는 남긴 말이다. 아니 이 말을 남기기 전, 더 먼저 살핀 것도 있다. 혹시 갚지 못한 빚이 있는지다. 3년 전 계약서 쓰고 인세까지 받았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한 동시집이 있다는 걸 알고서는 일단 동시집부터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장남 등을 불러다 저 말을 남겼다.

20세기 한국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충청도 말을 끝없이 이어가면서도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구사해 "가장 스타일리시한 작가"라는 평을 받았으나, 그가 남긴 말은 의외로 간명했다. '이미 내 마음은 정리가 됐으니 헛심 쓰지 말라' 그리고 '난 충분히 즐겁게 잘 살았다'고 말한 것이다. 앞의 말이 앞으로 닥쳐올 상황에 대비한 일의 처리 방향을 정해준 것이라면, 뒤의 말은 남겨진 이들에게 너무 슬픔에 빠지지 말라고 배려한 것이다.
스스로 "어쩌다 보니 쓰게 됐다"면서도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시작으로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왜 우린 아무 준비나 대비도 없이 있다가 유족은 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사에게 매달리고 환자 본인은 이런저런 주사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만 맞이해야 하는 건가. 슬퍼하는 가운데서도 그간의 삶을 함께 되돌아보고, 보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서로 위로해주는 죽음이란 불가능한 걸까. 영원한 이별이 슬프다 해도 이문구 작가 사례처럼 조금은 더 담담할 수는 없을 걸까.
지인들 불러다 '생전 장례식' 치른 배우 박정자
이런 고민은 유 교수만의 것도 아니었다. 실제 일부 변화의 조짐도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라면 지난해 5월 강원 강릉시 해변에서 치른 배우 박정자의 생전 장례식. 영화의 일부라곤 하지만 박정자는 수의 대신 빨간 구두에 꽃무늬 원피스를 차려 입고서는 초대한 지인 130여명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내밀었다. "꽃 대신 기억을"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을" 들고 오라고 당부했던 이 답게 "울지 말고 웃으라"며 함께 어울려 춤추기도 했다. 40~50대 정도만 돼도 유언을 미리 작성하고 생전 장례식까지 치러본다던 일본 슈카츠(終活·종활)의 한국 버전이라 할만 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해야 한다는 건 모두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모른다. 유 교수가 개설한 교양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가 10년 넘게 여전히 수백 명의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가 되고,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가 10만 부 가까이 판매되는 등 그의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큰 장애물이 놓여 있다. 죽음에 대한 너무나 강한 터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현세적 세계관에다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더해지면서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
그래서 유 교수는 죽음에 대해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이걸 '식탁 위에서도 죽음을 이야기하자'고 표현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책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새해 초에는 죽음을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참고로 유 교수 스스로도 매년 직접 유언장을 갱신하는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책 '유언노트'에다가는 아예 자신의 유언 전문까지 실어뒀다. 그냥 써보라 하면 막막할 것 같아 자신의 사례를 공개한 것이다.
조금 더 사랑하며 살 걸, 그게 죽은 이들의 소망
내용은 차분하다. 만약 몸 상태가 나빠진다면 시설에 보내는 걸 저어할 필요 없고, 더 악화된다면 괜한 연명치료는 중단하고, 대신 충분한 완화치료를 부탁한다고 썼다. 그리고 장례식 때는 결혼 때 입은 양복과 구두를 입히고 신겨 달라고, 그리고 장례식장에는 '왓 어 원더풀 월드' 음악을 틀고 문상객들에겐 화이트 와인을 대접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뜻을 전한 뒤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은 가족의 행복이니 너무 오래 슬픔에 잠겨 있지 말고 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해뒀다.
괜히 강한 척 하거나 그런 게 아니다. 4년 간의 투병생활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래도 머리로는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다.

-'잘 죽자'는 게 쉽진 않은 말이지만, 그래도 요즘 화두가 되는 것 같다.
"아직도 저항감이 심한 건 맞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끝이 정해져 있다. 어떤 분은 '포르쉐 타는 인생이나 마티즈 타는 인생이나 그 끝은 다 똑같다'라고 표현하시던데 그 말씀 그대로다. 저마다 출발점은 다 다르고 걸어간 행로 또한 다 다르지만, 결국 최종 도착지는 죽음일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그 점에선 모두가 평등하게 다 똑같다. 거기다 '1955년생'으로 상징되는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죽음을 생각해야 할 70대가 됐다. 또 그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가장 크다는 1970년대생, 소위 X세대라는 이들 또한 부모나 친지의 죽음을 맞이할 시기다. '웰다잉' 문제가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반응을 실제 느끼나.
"10대, 20대들은 법의학 그러면 만화 '명탐정 코난' 같은 걸 보면서 자란 세대니까 사건 해결 위주로 관심이 많다. 하하. 죽음에 직접 관심이 많은 이들은 아무래도 높은 연령층이다. 얼마 전에도 어느 지역에서 은퇴한 분들 모임에 특별한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제 책을 보고 좀 더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거였다. 다 응할 수는 없지만 그런 초청 자체가 많아졌다는 게 높은 관심을 뜻하는 것 같다."
-CSI 영향인지 법의학 하면 다들 살인 사건을 떠올리긴 한다.
"의외로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한 해 부검이 9,000명 수준인데 흔히 떠올리는 살인 사건 같은 건 400명 정도다. 나머지는 좀, 뭐랄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어이없는 사고 같은 것들이다. 보통 의사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는 그 반대로 이미 죽은 이들의 흔적을 뒤쫓는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좀 더 좋은 마무리는 없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엔 죽은 사람들이 남긴 유서를 분석한 얘기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남긴 글을 분석해 발표한 논문을 책에선 좀 더 풀어서 썼다. 이런저런 분노, 회한 같은 게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좀 더 사랑하면서 살 걸, 그거다. 제 책이 죽음에 대한 거지만, 사실 삶에 대한 것이라 말씀드리는 이유다."
유서를 통해 본, 살아서 반드시 해야 할 일 다섯가지
첫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소 사랑한단 말을 충분히 하라.
둘째,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라.
셋째, 살아온 기록과 자산을 정리하라. 돈을 넘어 기억과 추억이다.
넷째, 장례 등의 절차를 위해 최소한 돈을 모아두라.
다섯째, 건강을 위해 노력하라. 일상에 지장 없는 수준이면 된다.
연명치료와 완화치료의 딜레마
-존엄사, 심지어 '조력 존엄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연명치료와 완화치료의 기준은 뭘까.
"애매한 건 사실이다.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암의 경우 말기에는 연명치료를 받되 임종기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해뒀다. 흔히 통증이 없도록 하는게 완화치료라곤 하지만 말기에도 통증을 줄이기 위해 완화치료를 할 수 있고, 반대로 임종기에도 지나친 통증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저농도의 항암치료를 할 수도 있다. 무자르듯 이거다 저거다 할 수 없으니 이론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건 연명, 치료 목적이 아니라 고통이나 기능을 줄여주는 걸 완화치료라는 정도로 구분한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완화치료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한다.
"보통 자제분들이, 그리고 환자 본인이 절대 포기를 못하시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선 그래도 마지막을 가족들과 함께, 그래도 온전한 정신이 있을 때 함께 하고 싶다며 완화치료를 택하시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반면 우리는 병원에 실려온 뒤 끝까지 치료에 치료를 거듭하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서 거의 정신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모두가 난감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연명치료를 하면서도 이게 과연 옳은 건가, 모두가 선뜻 묻지 못한다. 아,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완화치료가 무조건 옳다거나,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건 가치관의 문제라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또한 하나의 선택지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인센티브 부여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어떻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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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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