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렌즈로 본 유권자의 선택...‘정책·자질’ 합리적 선택 절실 [2026 신년특집]
정책·후보 역량 뒷전... 묻지마식 투표
정당·공천 구조가 유권자의 판단 제약
진영 충성·지역주의 관성에 선택 길들여
AI·SNS 결합한 맞춤형 알고리즘도
유사 사고만 접하는 ‘필터 버블’ 갇힐 위험
유권자의 선택, 개인 성향으로 설명 불가
주체로 설 수 있는 구조·환경 복원해야

LENS 1. 유권자의 렌즈
■ 나의 선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정책 비교의 결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정적 판단이나 체감 이익이 표심을 좌우해 온 경우가 많았다. 호감과 분노, 불안과 혐오 같은 감정은 후보에 대한 인상을 빠르게 형성하며 이는 이성적 판단을 대신하는 지름길로 작용해 왔다. “언변이 믿음이 간다”, “나를 위해 싸워줄 것 같다”는 인상은 구체적인 정책 검증 없이도 선택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곤 했다. 특정 정치 진영이나 익숙한 정치 선택을 우선하는 이른바 ‘묻지마식 투표’ 역시 이런 감정 구조의 연장선에 있다. 진영에 대한 호불호가 사회적 정체성처럼 굳어지면서 정책 및 후보 개인의 역량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최돈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투표 성향에는 후보들이 유권자에게 정책과 공약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내 집 앞 공약’에 반응하는 표심이다. 도로 확장이나 개발, 생활 기반 시설 확충처럼 일상에 직접 와닿는 공약은 단기적 기대감을 자극하며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는 현실 가능성과 무관한 즉흥적 지역 개발 공약이 반복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은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도 보인다.
LENS 2. 구조의 렌즈
■ 왜 같은 선택이 반복되는가
선거는 선택의 과정이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정당 구조와 공천 시스템, 중앙정치의 프레임은 유권자의 판단 범위를 좁히며 특정 방향으로 선택을 유도해 왔다. 최근 정치권에 고착된 팬덤 정치 역시 이런 구조 속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길들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에게 있어 정당이 설계한 공천과 경쟁 구조가 선택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동시에 규정하는 현실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책 경쟁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정당 충성의 자동 투표화’라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정당에 대한 감정적 소속이 강화될수록 유권자는 정책 비교를 생략하게 된다”며 “이때 투표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역 기반의 정치 구도와 관성적 지역주의 역시 유권자의 선택 폭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정당과 지역에 의해 선택 구조가 고착된 상황에서 지방선거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임에도 실제 쟁점은 중앙정치의 연장선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지역 현안은 사라지고 중앙 권력 구도가 선거를 지배하면서 유권자는 지역 후보의 역량보다 정치적 진영부터 묻게 된다.
LENS 3. 환경의 렌즈
■ 선택은 어떤 환경 속에서 편향되는가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판단이 형성되는 조건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적 판단은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의 토론 속에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결합한 환경에서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해 맞춤형 정치 정보를 제공하며 표심 형성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는 자신과 유사한 생각만 반복적으로 접하는 ‘필터 버블’에 갇히기 쉽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5년 보고서에서 SNS 추천 알고리즘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반대 의견이나 다른 진영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구조적으로 낮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판단이 비교와 숙고가 아닌 확증의 과정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한다. 실제 정치 정보 소비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쿠키뉴스가 실시한 2025년 2월 조사에 따르면 성인 응답자의 약 29%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가장 의존하는 매체로 유튜브 등 SNS를 꼽았고 절반 이상은 자신이 시청하는 정치 채널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개인화된 정보 채널이 정치 인식의 관문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는 배경은 한둘이 아니다”며 “사람들이 자신이 신뢰하는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치적 정보를 접하면서 서로 다른 시각이 대화보다는 대립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선택을 만든 조건들
세 개의 렌즈를 통해 드러난 것은 유권자의 선택이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거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책임을 묻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선택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환경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유권자가 주체로 설 수 있는 조건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선거를 바꾸는 출발점이다.
최돈위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감정적 투표를 하게 하는 원인이라며 정책과 지역 공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이를 위해 시민단체가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책과 공약 실현 가능성을 분석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활동이 결과적으로 선거에 대한 관심도와 투표율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내 집 앞 미래 결정… 올바른 정보로 꼼꼼한 후보 검증을”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투표율이 높아지면 정당 지도부나 국회의원도 자기 뜻대로 결정하기 어렵다”며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곧 주인 의식을 실천하는 일이고 지방정치의 방향을 유권자의 손으로 결정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지방선거의 경우 중앙정치에 비해 유권자의 선택이 정책과 행정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지방정부의 정책과 예산, 행정 방향은 선거 결과에 따라 즉각적으로 달라진다”며 “이 때문에 지방선거야말로 유권자의 참여 여부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후보 선택 기준으로는 ‘도덕성’과 ‘지역 문제 해결 경력’을 꼽았다. 그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선거공보물에는 전과 여부, 세금 납부, 재산 변동 등 도덕성을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담겨 있다”며 “이런 기본정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후보를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후보를 평가할 때 공약의 ‘그럴듯함’보다 ‘현실성’을 따져보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 여건을 벗어난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공약이 지역의 실제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는지, 실행 주체와 재원 마련 방안이 제시돼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공정선거의 조건으로는 ‘투명성’과 ‘정확성’을 강조했다. 엄 교수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즉각 보고·공개돼 유권자가 평가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루머나 AI 기반 가짜 영상 등 허위 정보에 대한 신속한 판별 체계도 필수적”이라며 “사실에 근거한 판단 환경이 마련돼야 후보도, 유권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한 선거 환경이 확보될 때 투표 참여 역시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다고도 했다. 엄 교수는 “유권자가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신뢰가 쌓여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참여율 제고를 넘어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반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성훈 기자 lllk1@kyeonggi.com
김선욱 기자 seonk7@kyeonggi.com
김현철 기자 sniperhyun@kyeonggi.com
김영호 기자 ho3920@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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