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시장의 가장자리에서 건져낸 취향의 목록들 [2025 행복한 책꽂이]

장일호 기자 2026. 1. 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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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하나 허투루 들여놓지 않는 동네책방에 곤란한 부탁을 했다. ‘2025년 올해의 책을 골라달라.’ 대형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다양한 주제와 장르가 목록의 별자리를 이룬다.
9월28일 경기도 용인 리브레리아Q에서 <고르는 마음> 북토크가 열렸다. 전면에 보이는 서가에는 페미니즘 도서만 모아두었다. ⓒ선재 제공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리브레리아Q가 문을 연 날은 2020년 7월31일이다. 이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4명이었다. 그런 세부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서점원 정한샘씨는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손님이 사 가시는 모든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서점원”이라는 자부심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책이 연결해주는 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출간된 〈고르는 마음〉(오후의소묘)은 그 시간을 버티며 쓴 글과 마음을 모은 책이다.

‘고르는 사람’은 리브레리아Q를 포함한, 모든 동네책방 서점원의 주요 정체성이기도 하다. 신간은 쏟아지고, 책방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새로 나온 책 종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기준 6만4306종이다(집계 방식에 따라 7만~8만 종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큐레이션은 필수이고, 이는 동네책방을 각각 ‘다르게’ 재밌게 만든다.

오늘의 동네서점이 제공하는 ‘동네서점 지도’ 등록 기준에 따르면 2024년 전국 동네책방은 926곳인데, 어느 한 곳도 같을 수 없다. 서가 자체가 책방의 ‘편집’이기 때문이다. 책방 서가는 서점원의 무수한 고민과 선택과 결단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서점원이 어떤 책을 고르느냐에는 그 책방의 가치, 지향, 생각이 고스란하다. 많이 매입하고 쉽게 반품하는 대형서점과 달리 동네책방은 ‘꼭 팔고 싶은 책’ 위주로 책을 매입하기 때문이다.

이때 또 하나 주요하게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는 ‘마음의 손금’이 맞는 단골손님의 취향이다. 책방의 고유함이란 서점원과 단골손님의 합작품인 셈이다. 지역성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동네책방을 주요 여행지 삼아 떠나는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숫자 1이 나란한 모습이 꼭 서가에 꽂힌 책(冊)을 닮았다고 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정한 ‘서점의 날’인 11월11일은 〈내가 사랑한 서점〉(니라이카나이)의 책 생일이기도 하다. “책을 파는 것을 넘어서 한 지역을 기록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공간인 동네책방이 “오래 그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만든 책이다. 지금은 사라진 서점에 대해, 이제는 ‘서점을 잇는 사람들’이 된 서점원 15명이 애틋한 추억을 펼쳐놓는다.

〈내가 사랑한 서점〉 필자 중 한 명인 강원도 동해시 서호책방 서점원 류지혜씨는 ‘동쪽바다 책방,’에서 비로소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정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 ‘동쪽바다 책방,’을 만났다. 그 책방에는 “대형서점처럼 책이 많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읽고 싶은 책은 훨씬 더 많았다.” 단골손님이 되어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와 세상을 책에 겹쳐 보는 눈을 얻었다. “분명 한 권의 책인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 수만큼의 책을 읽은 것처럼 풍성해졌다.” 서점이 2017년 갑작스럽게 운영을 종료하면서 독서 모임도 도서관과 카페를 떠돌며 이어졌다.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갈증을 좀체 떨칠 수 없었다. “문을 열지 않을 때보다 열었을 때 손해인 날이 허다”하지만, 2019년 시작한 서호책방을 류지혜씨는 “조금 더” 해보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책 지도를 선물하는 마음으로

동네책방은 이런 방식으로도 독자를 키우고, 기른다. ‘2025 행복한 책꽂이’를 준비하며 올 한 해 동네책방 서점원은 어떤 책을 읽고, 사랑했는지 궁금했다. 동네책방 서점원이 독자에게 권한 책 목록이야말로 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새로운 책 지도’가 되어주지 않을까. 몰라서 만나지 못한 좋은 책들을 만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잘 팔린 책보다 잘 팔고 싶었던 책, 책방에 제 나름의 의미가 있는 책 2~3권을 선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책방에 있는 어느 책 하나 허투루 들여놓지 않은 서점원으로서는 꽤 곤란했을 부탁이다. 신간이냐 구간이냐보다 ‘팔고 싶은 책’이 더 중요한 동네책방에, 2025년 출간된 책에서 골라달라고 선택의 폭까지 좁혔다.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국 28개 동네책방에서 책 78권 목록과 간단한 선정 이유를 보내왔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출판 시장의 가장자리에서 건져 올린 취향의 목록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은 출판사와 신인 작가, 대형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다양한 주제와 장르가 목록의 별자리를 이룬다.

여러 서점이 동시에 선택한 책은 8권이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김혜순, 문학과지성사),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김지승, 마티),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리사 리드센, 북파머스), 〈여름철 대삼각형〉(이주혜, 민음사), 〈오직 그녀의 것〉(김혜진, 문학동네), 〈우는 나와 우는 우는〉(하은빈, 동녘), 〈죽은 다음〉(희정, 한겨레출판), 〈지극히 나라는 통증〉(하재영, 문학동네)이다(가나다순). 목록은 겹쳐도 선정 이유는 제각각이라 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소설 〈섬에 있는 서점〉(문학동네)의 주인공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이렇게 청혼한다. “내가 읽은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고백은 모든 동네책방 서점원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명대사(?) 중 하나는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이다. 이어지는 책 소개를 읽다가 마음이 동한다면 해당 서점에 주문하거나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책방과 맺은 ‘관계’가 책뿐만 아니라 동네까지 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참여 책방 및 서점원(가나다순) 가문비나무아래 박진숙, 골목책방서성이다 정홍윤, 나락서점 박미은, 나른한책방 백소현, 너의작업실 김태영, 다즐링북스 홍지영, 달팽이책방 김미현, 리브레리아Q 정한샘, 마을상점생활관 최형진, 반달서림 유민정, 보배책방 정보배, 북끝서점 김상아, 사적인서점 정지혜, 살롱드마고 달리, 서호책방 류지혜, 어떤바람 김세희, 오늘은책방 원지윤, 완벽한날들 최세연, 이것은서점이아니다 한채원, 이후북스 황부농, 쩜오책방 이정은, 책가도 박가현, 책방누크 김혜민, 책방바라타리아 장남운, 책방토닥토닥 문주현, 책봄 최현주, 책의기분 조순영, 한쪽가게 김나경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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