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美가 담긴 차 한잔...문화를 파는 공간 ‘카페 와비사비’

신현암 팩토리8 대표 2026. 1. 1. 15: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신현암의 ‘新도쿄견문록’] 한잔 1만5000엔짜리 고급 차도
지난해 4월 도쿄 쓰키지 지역에 문을 연 '와비사비 카페'의 내부 모습. 와비사비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뜻하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을 말한다. /와비사비 카페

도쿄 쓰키지(築地) 지역에 ‘와비사비 카페’라는 공간이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와비란 가난함이나 부족함 속에서도 마음의 충족을 끌어내는 일본인의 미(美) 의식이고, 사비란 한적한 가운데에서도 더없이 깊고 풍성한 것을 깨닫는 미의식이다. 조금 금 간 그릇, 색이 바랜 나무, 울퉁불퉁한 도자기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상함과 아름다움, 우아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와비사비다.

일본엔 차를 마시는 예법이 있는데, 이를 다도라고 한다. 일본의 다도 애호가들은 “비록 차는 중국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졌지만, 일본에서는 음료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까지 특히 깊게 발전했다”고 말하곤 한다. 일본에서 차의 역사를 보면 차 마시는 행위를 문화로 완성시킨 사람으로 센노 리큐가 자주 거론된다. 그가 강조한 철학이 바로 와비사비였다. 그래서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카페와 결합하면 커피가 아닌 차(茶)가 떠오른다.

와비사비 카페를 만든 이는 사토 순야다. 2002년 후쿠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쌀과 과일을 재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1차 산업에 꿈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싹텄다. 그리고는 차에 눈을 돌렸다. 그는 “포도나 보리도 1차 산업의 산물이지만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와인과 위스키처럼 즐기는 문화로 바뀌지 않았는가. 지금 일본은 커피가 넘쳐나고 있다. 반면 차는 아무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간과 ‘향기의 기억’을 소환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 카페의 대표 상품은 ‘일본차 5종 페어링 세트’다. 말차에는 초코 브라우니 같은 작은 먹거리를 곁들이고, 호지차·센차·옥로(玉露)·일본 홍차에도 각각 어울리는 페어링을 붙인다. 아울러 차 종류별로 몇 도에 우려야 가장 맛있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일본차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라 말해도 될 듯하다.

거품을 내는 도구인 차선을 사용해서 스스로 말차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한 모금에 ‘취한 듯한 감각’을 표방하는 고급차 ‘황취’도 마실 수 있다. 한 잔 가격이 무려 1만5000엔인데, 차를 우려내는 동안 이 차의 역사와 맛에 관한 4분 정도 설명을 곁들인다. 이 카페 방문객의 60%가 외국인이라고 하니, 이들에겐 ‘일본차를 한 번에 이해하고 체험하는 코스’ 자체가 여행의 기억을 남기는 콘텐츠가 되고, 그 흐름 속에서 황취 같은 고가 메뉴까지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손님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비사비 카페는 무엇을 파는 곳일까. 먼저 ‘차를 이해하는 문화’를 제공한다. 단순히 차가 맛있다가 아니라 온도, 시간, 우리는 방식에 따라 향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손님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음으로 ‘정적, 여백, 마음챙김’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한다. ‘조용한 사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한잔’이란 소개 문구처럼 바쁜 도시 생활에서 ‘잠깐 멈추는 습관’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와비사비를 체험 가능한 일상 의식으로 만들어낸다. 와비사비라는 미학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한 잔을 직접 우려내는 행위, 차선을 사용해 말차 거품을 만드는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초심자나 외국인도 따라할 수 있게 만든다.

상품이 아닌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팔아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다들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에 팔아야 할까. 일반 차는 770엔을 받지만, 말차 체험은 1500엔, 페어링 세트는 2980엔, 나아가 황취에 1만5000엔이라는 가격을 책정한 와비사비 카페의 사례는 F&B(식음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교육, 콘텐츠, 패션, 여행, 리테일, 심지어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에서도 문화, 라이프스타일, 일상 의식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최신 글로벌 경제 트렌드를 담은 WEEKLY BIZ 뉴스레터로 당신의 시야를 넓히세요.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