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in] “저는 영원한 구리 사람입니다”...예향 남도 맥을 잇는 설파(雪葩) 문공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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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께서는 8개월 동안 먹만 갈게 하셨지요. 먹물의 농담을 알게 된 뒤에야 붓을 잡게 하셨습니다."
설파(雪葩) 문공수 서예가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서예의 길에 들어섰다.
작가로서 명성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설파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설파서예연구원'을 열고 정착했다.
연변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삼육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으며, 설파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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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께서는 8개월 동안 먹만 갈게 하셨지요. 먹물의 농담을 알게 된 뒤에야 붓을 잡게 하셨습니다."
설파(雪葩) 문공수 서예가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서예의 길에 들어섰다. 붓보다 먼저 먹을 갈며 인내와 집중을 배우는 시간은 추상같았던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스승은 한국 미술사의 큰 줄기인 운림산방을 잇는 대한민국 5대 작가 중 한 명, 의재(毅齋) 허백련 선생이다.
문공수와 의재 선생의 인연은 부친으로부터 시작됐다. 고향 전남 광주에서 토건회사를 운영하던 부친과 의재 선생은 막역한 사이였고, 그 인연으로 어린 문공수는 자연스럽게 의재 선생의 문하에 들게 됐다.
"스승께서는 서화에 모두 능하셨지만, 제게는 그림보다 글씨를 먼저 익히게 하셨습니다."
먹을 가는 시간만 3년. 묵향 속에서 기초를 다진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호남예술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를 계기로 예술대학에 진학, 대학 시절 4년간 서예 붓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리며 예술적 시야를 넓히는 시간도 가졌다.
의재 선생은 제자에게 '흰 종이에 꽃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라'는 뜻을 담아 눈 설(雪), 꽃 파(葩)를 써 '설파(雪葩)'라는 아호를 지어줬다.
대학 졸업 후 1973년, 그는 유네스코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과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 겸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백제미술대전, 한국문화예술대전, 아시아평화예술제 등 주요 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로 활동하며 중견 작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설파의 작품 세계는 기존 서체를 답습하는 데서 벗어나, 문장의 핵심이 되는 글자의 심성을 부각하는 특징이 있다. 선(線)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독자적인 서풍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모든 서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승천하는 용의 기운을 담아낸 '용(龍)' 자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큰 찬사를 받으며 중국천진미술대학, 산업대학, 북경공상대학 등에서 객좌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대상 금장을 수상하며 우리나라 중견 서화가로서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서독,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일본 등지에서 열린 해외 초청 전시를 통해 소개되며 한국 서예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작가로서 명성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설파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설파서예연구원'을 열고 정착했다. 그렇게 구리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45년. 그동안 그의 서실을 거쳐 간 문하생은 2천 명이 넘는다.
"1996년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등극 50주년 기념 한·중·태 3개국 초대전에 제 문하생 23명도 함께 참가했습니다. 10년 전 태국 국립 랑캄항대학교 초대전 이후 제 작품이 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계기가 됐지요."
이후 설파의 해외 순회전은 꾸준히 이어졌고, 그는 전시 활동과 더불어 신진 작가 발굴, 지역 문화예술을 잇는 가교 역할에도 힘써왔다.
설파의 수제자로는 유일한 성구(聖句) 작가로 알려진 소담 김명화 작가가 있다. 연변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삼육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으며, 설파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붓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잡아야 합니다. 붓을 드는 행위는 제게 종교적 의식과도 같습니다."
설파의 글씨는 구리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구리청소년회관과 구리초등학교, 시립공설묘지, 13도창의군집결지 현판을 비롯해 각종 문화유적과 공간에 그의 필체가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저는 영원한 구리 사람입니다."
장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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