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시간 주권’ 되찾는 새해가 되길 [세상읽기]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제곱근의 개념과 공식 유도 과정을 배울 즈음 나는 ‘수포자’ 될 기미가 다분했다.

이 공식이 도출되는 원리를 수학 교사에게서 딱 한번 설명 들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숫자 대신 왜 a, b, x 같은 알파벳 기호가 나오는가? 상수항을 왜 우변으로 이동시켜야 하는가? 궁금했지만 질문하기 힘들었다. 설명을 마치자마자 선생님이 연습 문제를 내주셨고, 연이어 여러가지 응용문제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문제에 담긴 단서 될 만한 숫자를 공식에 나오는 a나 b, 또는 c에 대입해서 푼다. 그러면 적어도 정답을 ‘찍을 수는’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제곱근 도출 공식을 단 한번이라도 되새겨본 적은 없다. 앞의 공식 하나만 암기해서 계속 적용하면 대충 해결됐으니까 말이다.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다. 제곱근 공식은 왜, 어디에 쓰려고 배웠던 것일까? 그뿐이 아니다. 나는 왜 미적분, 수열, 함수, 집합, 통계를 배웠던가?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곳에 산이 있기에 올랐다’는 산악인의 말처럼, 나도 문제가 눈앞에 있으니까 그냥 풀었다. 총점이 잘 나와야 대학 진학에 유리했다. 거기에 배움의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인간이 ‘무엇인가 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뇌과학에서는 뇌 속의 신경세포들이 두껍게 연결되는 현상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지식의 구조, 다른 말로 ‘스키마’가 확장되는 것을 지칭한다. 지구 역사에서 다섯번에 걸쳐 일어났던 ‘대멸종’ 사건을 설명하려면 지질학, 생물학, 화학에 관한 기본 지식을 갖춰야 가능하다. 세번째는 존재적 이해다. 지식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현상을 이른다.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수학이라는 언어’로 미립자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근의 공식을 이해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상품 가격을 얼마나 올렸을 때 최대 이윤이 발생하는지, 현수교를 건축하면서 케이블의 곡률은 얼마인지 알아볼 때 사용된다. 나중에 깨달았다. 수학은 자연과 인간 세계의 비밀을 풀어내고, 해석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를 깨치게 만드는 아름다운 학문이란 사실을.
2026년 새 학기에 중학교 3학년이 될 학생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에게 제곱근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까? 제곱근뿐만이 아니다. 고전문학이나 시는 왜 배워야 하며, 유전자 염기 서열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할까. 이렇게 보면 국가 교육과정을 이루는 학습 내용 모두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누군가 이런 대답을 내놓을지 모른다. 이는 ‘질 좋은 수업’의 설계와 실행 과정을 통해 가장 잘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일견 맞는 대답이지만 이내 질문이 잇따른다. 질 좋은 수업이란 또 무엇인가?
즉답하기에 앞서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한 학습 회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 ㅁ이 그것이다. 새로운 회원(학생)이 온라인으로 등록하면 개인별 학습 수준과 성취도를 파악한다. 맞춤 일정표를 짜고 매일 수행할 학습 내용을 지정해준다. 개념·심화·평가로 이뤄진 3단계 훈련을 진행한다. 집중력 향상을 높이고자 브이알(VR)이나 게임형 학습 콘텐츠를 지원한다. 학부모 안심 플랫폼도 운영한다. 자녀의 공부 현황, 진도, 성취도, 학습 계획표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빈틈없는 수업 설계와 전달 과정, 연습, 평가 체계로 짜여 있으니 ‘질 좋은 수업’이라고 불러야 할까?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학생은 공부라는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들은 신체와 감정, 발달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 유기체다. 온라인 플랫폼 ㅁ은 이 부분을 학습 설계에 반영할 수 없다. 체계가 흡수할 수 없는 변수와 예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교육은 수업에 의존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업 방식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학생 자신으로 성장해야 할 ‘존재의 시간’은 누가 관리하고, 쓰임새를 결정할 것인가? 교육의 핵심은 누가 ‘배움 시간의 주권’을 가지느냐에 달렸다. 질 좋은 수업, 학생 성장의 불규칙한 곡선, 배움-가르침에서의 주도성 모두 시간적 자유를 누릴 때라야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새해 첫날, 학생과 교사에게 시간 주권을 되돌려주기를 기원한다. 호흡 정지 상태에 있는 우리 교육 체계에 따뜻한 피를 돌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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