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진 칼럼]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세계 마라톤사의 진짜 영웅 손기정

권정식 2025. 12. 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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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우승자’가 아닌, ‘위대한 세계챔피언’으로"
손기정기념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종목 시상식 사진. 왼쪽부터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손기정. 손기정 뒷편으로 은메달을 따낸 영국의 어니 하퍼의 모습이 보인다. 자료=손기정기념재단 제공  
유범진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이사장

시상식이 시작되자 우승자를 호명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이름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이 아닌 "키테이 손(Kitei Son)" 일본식으로 왜곡된 이름이었다.

손기정은 일본식 한문 표기로 불린 채 시상대에 올랐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가운데 일장기가 게양되었다.

그 순간 그는 손에 쥔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세계 정상에 오른 마라톤 영웅에게서 그 어떤 자부심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 그것은 나라를 잃은 한 청년의 설움이었고,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해 온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을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서술이다.

손기정 선생이 뛰었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시대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시대였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베를린에 머물던 내내 서명란에는 항상 'korea'를 적었으며, 마라톤 경기일인 8월9일 이전까지 일본 국적이 표시된 운동복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시상대 위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일본 국기를 달 수밖에 없었고,우승했음에도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슬픈 우승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한쪽 모습만 기억해 왔다.

손기정 선생은 2시간29분19초라는 압도적인 세계신기록으로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 이는 단순한 금메달이 아니라 당시 세계 마라톤 역사에 새겨진 위대한 업적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우승을 '영광'보다는 일장기 말살 사건, 그리고 해방 전까지 이어진 일제의 만행과 결부시키며 '슬픈 우승자'라는 틀 속에 가두어 기억해 왔다.

손기정 선생의 우승은 개인의 슬픔으로만 소비되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도 컸다. 당시 이 승리를 바라보던 민족 지도자들의 시선은 분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일제의 탄압 아래서 먹고 호흡했을 뿐,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중에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조선의 명예를 위해 세계무대에서 싸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 삼천만 겨레도 두 선수와 같이 굳센 의지를 발휘하자"고 외쳤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는 오늘까지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남승룡 군으로 인해 세 번 울었다. 조선 사람이면서도 조선인 행세를 못해 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컴컴한 방 안에서 신문을 통해 보며 가슴 아파 울었다"며 이날 승리를 민족의 아픔이자 희망으로 기록했다.

손기정이 영국의 하퍼와 선두 경쟁을 벌이며 출발 1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사진. 

이들의 증언은 분명히 말해 준다. 그의 우승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조선이 여전히 세계와 싸울 수 있는 민족임을 증명한 역사적 승리였다.

1948년 런던올림픽 선수단 기수였던 손기정 선생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76세의 나이로 성화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주경기장에 들어섰다.

그 모습을 육상심판으로 현장에서 지켜본 필자로서는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진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12월18일 필자는 김태화 아리랑응원단 서포터즈 사무총장과 함께 서울 중구 만리도에 있는 손기정기념재단(이사장 김성태)을 방문했다.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과 2026 미주 월드컵, 그리고 스포츠 응원 문화에 대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뒤 기념관을 찾았을 때 가슴이 뛰는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송함이 밀려왔다.

이 감정은 비단 나 개인만의 느낌이 아니라, 모든 육상인을 포함한 수많은 후배 체육인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손기정 선생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현재 손기정기념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의 국적 및 이름 표기 정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지난 11월16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시작해 내년 7월31일까지 진행 중이다.

손기정 선생의 외손자이자 이창훈 선생(1956년 멜버른올림픽 마라톤 4위, 1958년 동경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의 아들인 이준승 사무총장은 "이는 단순한 표기 수정이 아닙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세계 스포츠사에 기록된 한 영웅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입니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만의 노력이 아니라,우리 체육인 모두가 함께해야 할 국민적 과제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손기정은 슬픔 속에 머물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암흑기 속에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마라토너이자 불굴의 스포츠 영웅이다.

이제는'슬픈 우승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세계 챔피언 손기정을 후대에 제대로 전해야 할 때다.

육상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손기정 선생에 대한 기획 연재 칼럼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선배들의 위대함과 현재 우리나라 육상의 현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것이 늦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우리 체육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손기정이 성화를 들고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고 있는 사진. 

 

스포츠한국 권정식 jskwo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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