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5년은 한국사회 역사의 기로 [신진욱의 시선]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25년이 간다. 역사가 어디로 떠밀려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위기의 시간이었다. 대통령경호처의 무력시위, 수십만명의 극우 집회, 폭도들의 법원 난입, 윤석열 석방 등, 충격과 혼돈, 두려움의 순간들이었다.
불과 반년 전이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들은 마치 악몽을 꾼 듯, 환영을 본 듯 비현실적인 감각을 자아낸다. 내란 시도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덕분인지 모른다. 정권 교체 후 사회가 안정을 찾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위기의 구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면, 때 이른 자화자찬과 승리주의는 위험한 것이다. 격동의 한해를 보내며,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역사의 흐름 안에 놓여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1987년 이후로 한국 민주주의는 상반된 두 경향이 함께 진행된 모순적 과정을 겪었다. 한편으로 민주적 헌정 제도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들의 역량이 강화됐다. 그 역사적 성취가 없었다면, 국가권력을 총동원한 내란을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점점 강력해졌다. 3김 시대에는 보스정치가, 그 후엔 정치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문제였지만 그것은 민주주의 ‘내의’ 문제였다. 하지만 12·3 내란과 뒤이은 헌정 위기는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이 정도로 심각한 위협이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민주화 이후 첫 20년간은 비록 독재 유산이 있었지만, 과거와 단절하고 정치개혁, 사회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전제에 노골적인 반대는 드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진보 세력의 권력화, 한나라당의 총선 참패를 겪으면서 보수의 위기의식이 극에 달했고, 뉴라이트와 반공단체를 주축으로 민주화에 대한 반격이 개시됐다. ‘우파’ 정체성 정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증오, 독재를 미화하는 문화정치와 역사전쟁이 모두 이때 시작됐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정치개혁에 대한 뜨거운 국민적 열망 속에 출범했지만, 불평등 심화, 비정규직, 자살률 급증, 집값 폭등 같은 여러 사회문제로 인해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보수·우파 세력은 이 같은 상황을 맹렬히 공격하며 2004년 총선 참패에서 빠르게 회복했고, 2006~2008년 지선, 대선, 총선에서 연이어 압승했다. 이 시기 투표율은 민주화 이후 최저였는데, 특히 진보 성향, 청년 세대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이처럼 열정과 환희가 머잖아 허무와 절망으로 바뀌는 패턴이 이때 시작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지수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추락했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 전두환의 보안사처럼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가 정치공작에 동원됐다. 또한 사회에 극우가 성장하는 토대가 이때 생겨났다. 기무사와 국정원의 ‘댓글부대’가 극우·혐오 담론을 대량 유포했고, 일베류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번성했다. 결국 이러한 퇴행은 대통령 탄핵으로 종결되었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직권남용, 뇌물수수, 횡령 등으로 각각 17년, 22년 형을 선고받았다.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많은 사람이 ‘촛불혁명’과 ‘케이(K)민주주의’를 찬미했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은 집권 2년차까지 80%에 육박했다. 정당 지지율도 집권 초기 1년간 더불어민주당이 50% 안팎에 달한 데 반해, 자유한국당은 10%를 겨우 넘는 정도였고 전광훈 극우 세력의 동원력에 깊이 의존했다. ‘보수의 궤멸’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보수 정치는 불과 2년 만에 재기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후 외교 성공의 효과가 사라지고, 조국 장관을 둘러싼 대립을 겪으며 촛불유권자 동맹이 분열되면서다. 2020년 이후엔 집값 폭등, 자산 격차, 청년 고용 악화 등 구조적 문제로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했다. 보수 정치는 그 균열을 파고들어 ‘청년’ ‘상식’ ‘공정’을 내걸고 정권 교체를 이뤘는데, 윤석열 집권 후에 민주주의 후퇴는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마침내 독재, 인권 유린, 전쟁 도발 시도까지 온 것이다.
이처럼 보수 정치가 점점 극우화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점점 거세진 장기 추세를 중단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현시점의 시대적 사명이다.상황은 아직 불안정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평가율은 5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보다는 지지 기반이 좁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민주당이 40%대, 국민의힘이 20%대로 차이가 꽤 있지만, 한자릿수 차이로 좁혀지기도 한다. 특히 20대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60대보다 높고 민주당 지지율은 70대보다 낮다. 민주당은 긴장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국 사회는 2026년에 여러 중요한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첫째는 민주적·헌법적 원칙을 제도와 실천 양면에서 확고히 하는 일이다. 내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완수는 물론이고, 나아가 극단주의 행위를 규제할 법률적 근거를 제도화해야 한다. 음모론과 증오, 선동이 난무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또한 실천의 면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의 표리부동은 엄하게 다뤄져야 한다. 집권 세력의 부패나 권력 남용이 용인되면, 개혁의 동력이 소실된다.
둘째는 극단 세력을 고립, 소수화하는 일이다. 민주적·헌법적 규범을 존중하는 자만이 공직에 오를 수 있게 해야 하며, 능력을 펼치고 싶다면 극단주의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 나아가 보수 정치권의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 보수 정치는 뉴라이트 이후 계속 과격화되어 이제 명백한 극우 정당이 됐다. 이들이 역사에서 소멸하고, 새로운 보수가 성장해야 한국 민주주의가 정상화된다.
끝으로, 사회의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불안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이다. 대중의 불안이 커지면, 이를 공포와 증오로 증폭시키는 파시즘 정치가 힘을 얻는다. 환율, 주식, 물가, 집값, 고용 등 경제 문제, 또는 외교·안보상의 불안 요인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대가 흔들린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모두 이 점에서 지지층 이탈을 초래하여 비민주적 세력에 정권을 넘겨줬다.
이재명 정부 5년은 한국 사회가 역사의 기로에 선 시간이다. 이 5년이 실패한다면, 다음 역사는 누구도 알 수 없다. 2026년이 온다. 이제는 환희와 절망의 반복을 끊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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