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80주년 기획 광주·전남 독립운동현장 50] (50·끝)남도 항일독립사, 거대한 민족의 바위에 새겨 영원히… [전남항일독립운동기념탑]
한말의병 혼 독립군, 학생독립운동, 광복군으로 면면히 계승
한반도와 중국, 만주, 연해주 등지서 활약한 항일투쟁가 경외

전남도청이 위치한 무안군 삼향읍 남악3로에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듯한 탑이 있다. 높이 17m의 이 탑에 전남의 항일 독립정신이 아로 새겨져 있다. 전라남도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지난 2020년 10월30일 건립된 기념탑은 전남 출신 애국지사들의 진정한 광복을 염원하는 비상의 꿈을 담고 있다. 날개를 펴고 비상한 새의 형상을 통해 불굴의 독립정신과 미래지향적인 도민의 희망을 표현했다.
기념탑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야별 독립운동가 7인의 독립열사상과 함께 전남출신 독립유공자 1천281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한 1896년부터 국권을 빼앗긴 1910년까지 전라도 의병은 전국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했다. 김갑제 전 광복회 광주지부장은 "일제는 전라도 의병을 그냥 두고서는 침략의 야욕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 1909년 9월1일부터 10월말까지 소위 '남한폭도 대토벌 작전'이라고 명명된 의병 대학살작전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남도인의 불굴의 항일 독립정신은 독립군을 잉태시켰고, 이 독립군은 1930~40년대 항일무장세력인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모태가 되었다.광주전남의 무장투쟁의 항일 혼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은 해방 직전까지 일제의 잔인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 투쟁을 이어 나갔다. 학생운동 출신들은 1930년대 최대 비밀 농민운동체인 전남운동협의회, 40년대 제2학생독립운동체인 '무등회'를 꾸려 일제와 대적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1월2일부터 연재했던 [광주전남독립운동 현장50]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1회 광주독립운동기념탑에서 시작한 현장 시리즈는 친일파 단죄비, 기산도, 최익현, 나철, 전명운 의사를 만났다.

1894년 말 남도 땅을 휩쓴 동학도 지나 칠 수 없었다. 동학혁명운동 초기 승전지인 장성, 전투와 학살의 터 나주성, 최후 항전 석대들을 찾았다. 당대에는 승리의 증표였으나, 100년 후 쓸쓸히 방치되고 있는 토벌군의 비석에서 역사정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광주 전남은 유독 안중근과 인연이 많다. 그가 이곳을 거친 적은 없으나, 장성에는 전국 제1호 동상, 광주 중외공원에는 전국 제1호 기념비, 장흥 해동사에는 유일무이한 안중근 추모 사당이 존재한다.
1910년대 항일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다양한 비밀 결사체가 등장했다. 광주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신문잡지종람소', 1920년 청년운동체인 '흥학관', 1926년 광주 학생 첫 비밀결사인 '성진회'와 1929년 '독서회 중앙부'에 이르기까지 항일운동의 비밀조직도 탐색했다.
1920년대 전남을 휩쓴 농민운동의 핵인 신안 암태도소작쟁의를 깊게 볼 수 있었던 건 역사공부의 행운이었다. 소작회 결성과 1·2차 목포 원정 투쟁, 고문에 정신분열증을 앓다가 벼포기를 붙잡고 숨진 서태석 선생의 스토리는 역사 이전에 인간에 대한 경의를 품게 했다.
광주·전남 독립운동을 천착하면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도 여러명 대면했다. 흥학관에서 공부했던 왕재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장재성, 전남운동협의회 핵심조직원 김홍배, 이기홍, 윤가현. 여기에 조선공산당 재건조직인 경성콤그룹 지도자 박헌영, 이를 지원한 윤순달 등 지역 콤그룹 세포조직원들….
광복 80주년을 보내며, 항일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 선열들에게 머리 숙여 큰 절을 올린다. 중국 대륙 장강의 흙탕물을 마시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던 이들과, 만주대륙의 찬 바람에 온몸이 얼어붙지만 결코 놓지 않았던 항일 독립의 푸른 깃발-.민족의 거대한 바위에 이들의 빛나는 이름을 새겨 영원히 기억하리라.
/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