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소수 언어권’ 출판사가 사는 법…가치를 팔면 시장은 커진다 [.txt]
한국인구 20% 수준 불과한 스웨덴 독립출판
저출생·독서율 하락에도 “출판 위기?” 갸웃
다양성·혁신, 언어 다양화 등 어린이책 새 가치로



21세기의 첫 사반세기가 저문다. ‘살 활’의 활자(活字)는 기후위기 아래 생명체처럼 궁지에 몰려왔다. 이에 맞서 ‘기회의 활자’로 반전시키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도 있다. 한겨레가 이들을 찾아 영국, 일본, 미국, 독일을 톺은 데 이어 ‘소수 언어’라는 생래적 한계까지 지닌 스웨덴에서 그 장정을 마친다. 주제로는 ‘어린이의 책’이다. 한 독일인 전문가의 말마따나 “세계 아동 문학의 성배(Holy Grail)”로 스웨덴 아동 문학이 불리기까지 또 다른 파동을 일으키는 그곳 독립 출판인들을 만났다. 올해만큼 국내 어린이책 시장에서 곡소리가 쏟아진 적은 없다. ‘읽지 않은 아이는 읽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비관할 수밖에 없을 때, ‘읽는 아이가 읽는 어른이 된다’고 기대하는 작은 언어권 작은 출판사들의 이야기가 국내 출판계와 새 정부 정책·행정가를 지나, 마침내 독자에 가닿길 바라본다.
“대부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 들어온 책들이에요. 출판사 누리집을 통한 직접 구매 배송이 우리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만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전세계 인구는 스웨덴 1050만명을 포함해 1100만명 정도. 한국 인구의 20%에 불과하다. 성탄절을 먼저 맞은 출판사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수 언어권 출판사인데 내수로 충분한가, 영어권 시장을 목표로 하는가?
“아뇨, 스웨덴이 목표입니다. 애초 우리는 국외 번역 도서만 출판하고요. 스웨덴어 사용자가 (접경 국가인) 핀란드 등지에서 주문해 오긴 합니다.”
―저출산, 디지털 과잉 등으로 여러 어린이책 출판사가 위기를 호소한다. 트라스텐은 어떤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출산율과 독서율의 하락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출판 시장으로 보자면, 인쇄 비용이 올랐고요. 아동 도서는 컬러 때문에 제작 비용이 더 올라가는데도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소비자가를 인상하는 데 한계가 있죠. 또 유럽과 스웨덴 전역에서 아이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어지던 답변은 뜻밖으로 귀결한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로만 보자면, 큰 위기랄 게 없었어요.” 크론은 두번 말한다. 기자가 두번 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로지 국외 작품을 ‘발굴’해 ‘직역’으로만 소개하려는 번역 문학 전문 출판사다. “스웨덴 아이를 위한 세계 어린이책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설립된 트라스텐은 초기 연간 1~2종을 펴내다 올해 6종으로까지 몸피를 키워왔다. 트라난은 한해 15~20종을 출간한다. 스웨덴어로 번역된 첫 한국 소설(2001)을 포함해, 성인·아동 전체 작품의 원적이 90개국 안팎에 걸친다. 회사는 볼보 본사가 있는 스웨덴의 제2 도시 예테보리에 지점도 세웠다. 2018년이었다. 트라스텐은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25개 나라의 아동 문학서를 옮겨 오며 성패를 거듭한 결과, “3~6살 대상의 그림책”으로 신간 목록을 좁혔다.
트라난은 1997년 중국 작가 모옌을 스웨덴에 처음 소개해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 트라스텐은 ‘구름빵’의 백희나를 2019년 처음 소개해 이듬해 아동 문학계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알마상) 수상에 일조했다. 크론은 사세 확장의 또 다른 증거로 “2022년 채용된 저 자신”을 꼽으며 웃었다. 전까지 직원 둘이서 “꾸준한 성장”과 “성과”를 일궜다는 얘기다. 이제 인턴 1명이 더 늘었다. “아동·성인 아울러 번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수익도 커진 덕분이다. 성인 번역 문학 판매량과 아동 번역서 판매량이 연결되어 있다.”
소수 언어권의 운명적 출판 위기
하지만 이는 스웨덴 출판 세계의 일면일 뿐이다. ‘스웨덴의 진실’은 소수 언어권 시장에 발을 딛고서도 세계 아동 문학을 선도한다는 점이겠다. 이러한 부정합적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가. 한겨레가 이달 초순 스톡홀름 일대에서 만난 출판인들에게 거듭 물은 배경이다. 내수가 부족하진 않으냐고. 해외 시장이 결국 성장 내지 생존 조건은 아니냐고. 독립 출판사만 놓고 봤을 때, 하물며 스웨덴 예술위원회의 알마상 책임자 오사 베리만도 한겨레 인터뷰에서 “활기찬 독립 출판의 생태계는 어느 나라에서든 이익”이라면서도 “스웨덴의 문제는 인구가 고작 1천만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라질 않는가.
“아니요, 우린 스웨덴에서 출판합니다. 독립 출판사로서 신속하고, 작가·일러스트레이터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죠. 표준화된 공정이란 게 거의 없어요. 창의적 위험을 감수하는 데 능숙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생각해요.”(릴라 피라트 출판사, 2011년 설립)
“회사 만들고 20년 여태 사업은 잘됐어요. 최근 몇년 책 판매량이 줄긴 합니다. 시장이 더 안 좋아지면 해외도 신경 써야겠지만, 지금까진 내수에 주력하고 사업도 지속 가능합니다.”(올리카 출판사)
크론의 말처럼 스웨덴도 전세계 주요 국가에 닥친 출판 산업의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되레 요인은 더해지고, 얽힌다. 스웨덴 예술위의 베리만에 이어,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현 관장으로 내년 국가기록원장에 임명된 다니엘 포르스만 또한 한겨레에 말한다. “스웨덴·노르딕(북유럽) 출판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언어 시장이 독특한 도전 과제를 안긴다.” “자연스레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는 북유럽 언어로 “결실을 맺”고 “지속 성장해 왔다”는 저들의 활로가 한국어권 출판의 활로일 수는 없을까.
‘스웨덴도 낡았다’는 도전
―성평등, 다양성이 아이들에게 왜 중요한가?
“아들 얘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어요. 책에 자신의 현실이 존재하지 않을 때 아이는 아웃사이더라고 느끼고 제 가치를 절하시키죠. 성별, 머리색, 인종이 다양화한 책 세계에서 아이는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고, 사회에 포용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안정감, 소속감이죠.”
이는 우수한 국외 번역서의 필요를 강조하는 트라스텐 크론의 논리와도 닿는다. “정말 훌륭한 스웨덴 작품들이 많지만, 스웨덴 애들, 스웨덴 문화만 나와요.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과 그 (다채로운) 세계를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아이들이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후 ‘올리카적 가치’를 뒤따르는 자국의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고 토미치치는 말한다. “다양성을 다룬 책들이 훨씬 많아”졌으니, 올리카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부단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사회 변화적 이슈를 포착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가 새 경제재가 되어, 소수 언어권은 외연일 뿐 시장은 안으로 확장하는 격이다. 해외 또한 올리카가 우선하여 뒤쫓진 않았으나, 자연스레 올리카를 뒤따르고 있다. 약 60종의 어린이책으로 15개 언어권 독자와 만나고 있다.

한국 아이들에겐 위험한 바깥?
요행히(?) 올리카의 책은 당시 나다움 어린이책 134종에 포함되지 않았다. 출판사 다봄 쪽은 “학부모, 교사를 위한 성인 교육서로 분류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직격탄은 스웨덴의 유명 작가 페르닐라 스탈펠트(63)가 맞았다. 출판사 시금치가 국내 번역 소개한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이다. 원제는 ‘책’ 시리즈 중 하나인 ‘사랑 책’(The Love Book, 2001)으로, 사랑에 관한 여러 지식과 철학적 사유, 사랑의 동태가 아기자기 익살스레 전개된다.
21개 언어로 16개 작품을 국외 소개하고 있는 스탈펠트 작가를 지난 8일 오전 대형 출판사 라벤&셰그렌에서 만났다. 역시 ‘사랑 책’이 문제였다. 작가는 “러시아에 출간되었다가 동성애 대목 등을 의회가 문제 삼고 출간을 금지했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러시아는 자유사상이 존중받지 못하는, 독재 국가죠.” 2005년께 일이다.
―이후 어떤 책이든 ‘금서’ 논란이 제기된 나라가 있는가?
“(구겨진 인상으로 고개를 흔들며) 없어요.”
한국 언론과 처음 만나, 처음 전해 들은 5년 전 국내 소식에 스탈펠트가 처음으로 응답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왜 침실 문을 잠그는지 알 권리가 있어요.” 작가가 책으로 아이들과 벌이는 ‘지적 유희’를 가늠케 하는 한마디로서, 이 한 조각의 위트는 30년 문학관과 60년 생애를 눌러 담은 것이기도 하다.
“몸은 시간과 환경 속에서 우리의 운반체 역할을 하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 몸을 이해하고 그 필요를 아는 것은 좋은 삶의 필수 조건이죠. 좋은 아동문화(barnkultur, *각주 1)란 아이들이 자신과 삶,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분명히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지식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동물과 자연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의사, 아버지가 인문학자였어요. 연극하고, 그림 그리고, 발가벗고 수영도 했죠. 나체는 금기나 성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작가는 국립 현대미술관(모던 뮤지엄)의 직원으로, 어린이·청소년 대상으로 미술 교육도 한다. “관련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들은 물어요. 생명의 탄생, 정자가 어떻게 난자에 들어가는지….” 작가의 “어린이 시선”, 바로 창작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작가는 확신하게 된다. “아이들이 지식에 대한 권리, 문화를 통해 실존적 질문에 관해 성찰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카락 책’(1996), ‘똥 책’(1997), ‘죽음 책’(1999) 등 책 시리즈로 작가를 34살에 데뷔시킨 곳이 독립 출판사 에릭손&린드그렌이다. 라벤&셰그렌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과 함께 일했고 후임으로 어린이책 책임 편집을 맡았던 마리안네 에릭손(1924~2020)이 퇴직 후 차린 회사(*각주 2)다. 스탈펠트와 인터뷰한 출판사 내 접견실 이름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방’이다. “작가일 뿐 아니라 출판인으로서 교훈적 시각 없이 어린이의 시각 자체를 중시하는 작가 세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오사 베리만)고 평가받는 린드그렌의 조각상 앞에서 스탈펠트는 “제 책이 특정인들에게 그렇게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언어가 언어를 만날 때
릴라 피라트의 티투손 대표는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쓰인 글이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요. 이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기보다 인간으로서 더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우리가 서로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것과 정반대죠.”
스탈펠트의 책 11종을 국내 출간한 시금치의 송영민 대표는 말한다. “당시 사태가 부끄러워서 (지구 건너편) 작가에게 한마디도 전하질 못했어요. 나다움 논란 이후 공동구매가 취소되고, 반품도 잇따라 사실상 판매도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소수 언어권의 처지를 묻던 질문이 그러니 모두 되돌아온다. 무엇이 위기인가.
전통과 미래의 ‘빅뱅’
가장 번잡한 도심의 드로트닝가탄 거리(여왕 거리)를 지나 의회, 왕궁, 한림원 등이 있는 감라스탄(구시가지)으로 가자면 강 저 앞으로 도도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물 위로 남빛 네온사인을 드리운,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 노르스테츠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책을 모두 펴낸 데다. 홍보용 흔한 플래카드가 하나 없다. 따질 일이 못 된다. 이 출판사와 결부한 노벨 문학상 작가만 3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노르스테츠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이 오디오북(자회사 스토리텔)이다. 북유럽 최대 미디어·출판 회사 보니에르(보니르)의 북비트와 함께 북유럽 오디오북 시장을 좌우한다. 스토리텔 쪽은 한겨레에 “여기 독서 문화와 독서 인구는 한국과 다르고 ‘듣는 책’이 엔터테인먼트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며 “스토리텔 멤버십을 가진 가정이 넷플릭스만큼 흔하다.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중독되어 문제일 정도”라고 말한다. 음악·미디어 서비스로 이름난 스웨덴의 글로벌 기업 스포티파이가 올해 북유럽 오디오북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스탈펠트 작가도 “오디오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긴 어렵고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다”면서도 자신의 책을 영상과 오디오로 전환하는 데 적극적이다. 시대 감수성에 맞춘 개작에도 전혀 인색함이 없다.
전통과 미래의 ‘빅뱅’이 저 작은 언어권에서 저토록 다채롭게 벌어지고 있다.
각주 1: ‘어린이 문화’를 뜻하는 한 단어. 본연의 의미 외 북유럽에선 18살 미만 대상의 예술·문화 정책을 지칭하는 핵심 용어이자 고유의 학문 분야 이름으로 굳어졌다.
각주 2: 라벤&셰그렌이 2008년 에릭손&린드그렌을 인수하여 스탈펠트 작가의 작품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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