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선의 첫 번째 노엘

1883년(고종 20년) 5월 황해도 장연군 송천리의 작은 초가집에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세워졌다. 놀랍게도 외국인 선교사가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 자생적으로 설립됐다. 소래교회를 세운 서상륜은 인삼 장사를 하러 만주를 드나들다 존 로스 목사를 만나 세례를 받는다. 그는 로스 목사를 도와 성경 번역에 참여해 1882년 선양에서 최초의 우리말 성서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 요안나복음젼셔'(요한복음)를 출간한다.
서상륜은 한국 교회 최초의 권서(Colporteur.성경 보급인)로서 한글 성경을 국내로 들여오려다 압록강 국경에서 모두 압수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성경을 낱장으로 뜯어 꼬아서 새끼줄을 만든 뒤 짐을 묶거나 짚신을 만들어서 무사히 반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 서경조와 소래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했다. 외국에서 선교사가 오기도 전에 자국어 성경을 읽고 스스로 교회를 지어 예배를 드린 것은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희귀한 사례이다. 이런 조선인 특유의 믿음이 신해박해(1791년), 병인박해(1866년) 등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뚫고 한국 기독교의 여명을 밝혔다.
소래교회의 성탄절(聖誕節), 즉 크리스마스에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정성껏 성의껏 장만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성탄을 함께 축하했다. 성경을 낭독하고 찬송을 부르며 고단한 삶과 시대의 우울함을 이겨냈다. 성탄 등불을 들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 새벽송을 민요 가락에 맞춰 부르며 동네를 돌았다. 양반, 천민 가리지 않고 예배당에 모여 감사기도를 드렸다. 1894년 2월 소래교회에 부임한 캐나다의 윌리엄 맥켄지 선교사는 교인들이 전통 명절보다 성탄절을 더 소중히 여겼다고 기록했다.

맥켄지 선교사는 조선인이 되고자 했다. 조선 옷과 음식, 초가집을 고집하다 풍토병과 과로로 이듬해 6월 만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교인들과 하나가 됐다. 그의 한글 이름을 딴 학교인 '김세 학당'도 만들어졌다.
"나는 이제 조선 옷을 입고 조선 음식을 먹습니다. 이들과 함께 김치를 나누어 먹으며 성경을 읽는 시간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쌀, 짚신 등을 모아 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교인들의 얼굴에는 세상 그 어느 부자보다 더 큰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조선의 흙이 되어 조선 사람들과 함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는 유언대로 소래교회 뒷산에 잠들었고, 교인들은 헌금을 모아 초가집을 헐고 8칸짜리 기와집 예배당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새 예배당의 첫 행사로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2025년 대한민국의 크리스마스는 130년 전 조선의 성탄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맥켄지 선교사가 소래교회에서 맞았던 단 한 번의 크리스마스. 그가 이역만리 낯선 이방의 땅에서 발견했던 나눔과 감사, 사랑과 희망이 다시 이 땅에 찾아와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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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재훈 논설위원 floy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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