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 샌드위치’ 먹는 부류를 위한 월드컵?…2026 월드컵은 누구의 축제인가

김세훈 기자 2025. 12.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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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를 넣어서 만든 샌드위치. 게티이미지

축구 역사에서 한 단어가 시대의 변화를 꿰뚫은 순간이 있다. 2000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장 로이 킨은 올드 트래퍼드의 분위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라는 단어를 철자조차 못 쓸 것이다. 이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술 몇 잔 마시고, 프론 샌드위치 몇 개 먹고는, 그라운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거칠고 직설적인 이 발언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이후 영국 축구계에서 ‘프론 샌드위치 브리게이드(prawn sandwich brigade)’라는 말이 굳어졌다. 경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접대·네트워킹·사회적 과시를 위해 경기장을 찾는 상류층 관객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프론(새우)은 한때 영국 사회에서 명백한 사치품이었다. 하이 티나 VIP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프론 샌드위치는 부와 계층을 은근히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치솟은 티켓 가격은 노동계급 기반의 전통 팬들을 밀어냈고, 그 자리를 기업 임원과 접대 고객들이 채웠다. 킨의 한마디는 축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정확히 겨냥한 비판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프론 샌드위치는 여전히 축구 담론 속에서 살아 있다. 그리고 지금, 그 표현은 다시 한 번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를 향해 던져지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2026 월드컵을 “104개 슈퍼볼”에 비유했다. 문제는 이 수사가 가격 정책에서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치르는 개막전 한 경기 평균 관람가는 1825달러다. 이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의 세 배, 2018년 러시아 대회의 약 3.5배에 달한다. 팬들의 분노가 커지자 FIFA는 일부 국가에 한해 60달러짜리 저가 티켓을 발표했지만, 실제 배정 규모와 방식은 불투명하다. ‘헌신적인 팬’을 위한 조치라기보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프론 샌드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그 정서는 익숙하다. 슈퍼볼은 이미 상위 1%의 기업 행사가 된 지 오래다. 올해 슈퍼볼 평균 티켓 가격은 약 9800달러. 여행·숙박·식비를 포함하면 일반 팬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2026 월드컵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관중석 상당수는 열성 서포터가 아닌, 비즈니스 패키지 구매자·VIP·연예인·기업 고객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축구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축구를 소비하고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올여름 미국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은 하나의 경고였다. 높은 티켓 가격 탓에 다수 경기가 반쯤 비어 있는 경기장에서 열렸고, 중계 화면에는 빈 좌석이 그대로 노출됐다.

월드컵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FIFA는 이미 티켓 200만 장이 팔렸고, 2000만 장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요의 실체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이란, 아이티 등 일부 국가는 미국 입국이 제한됐고, 코트디부아르·세네갈 등 참가국 팬들 역시 입국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경기 보고 나면 바로 떠나라”는 메시지를 공공연히 던지고 있다. 비자 절차는 까다로워지고, 소셜미디어 기록과 DNA 정보 제출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결국 티켓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미국 거주 중산층 이상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월드컵의 진짜 가치는 화려한 라운지나 샴페인 잔이 아니다. 경기장을 흔드는 노랫소리와 야유, 깃발과 몸짓, 즉 팬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열기다. 로이 킨이 경멸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축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분위기를 죽이는 관중,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기장 구조였다.

2026년 여름, 북중미 16개 경기장에서 울려 퍼질 소리는 무엇일까. 열정적인 팬들의 함성일까, 아니면 VIP 라운지에서 부딪히는 샴페인 잔 소리와 프론 샌드위치를 씹는 소리일까. CNN은 “월드컵이 진정 ‘세계의 축제’로 남고 싶다면, FIFA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며 “프론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팬들을 다시 초대할 것인지 아니면 축구의 영혼을 대가로 최대의 흥행 기록을 택할 것인지 말이다”라고 적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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