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초의선사와 차
추운 날씨에 감기 기운이라도 있으면 따뜻한 차를 마신다. 목이 칼칼하고 한기가 들 땐 생강차를 즐긴다. 은은한 향의 모과차나 상큼한 맛의 유자차도 좋다. 이것저것 전부 차라고 하지만, 수많은 차의 원류는 차(茶)다. 정확히 말하면 차나무(Camellia sinensis)의 어린잎을 따서 만든 것만이 ‘차’다. 유럽에서 흔히 부르는 ‘tee’ ‘tea’ ‘the’ 등의 용어도 원산지인 중국 남부 지역에서 부르던 ‘茶(차)’ 발음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 차의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은 초의선사다. ‘돌밭의 풀을 엮어 한 몸을 가린’ 초의라는 법명은 스승 완호 스님이 지어주었다. 그가 머물던 일지암이라는 명칭은 ‘뱁새가 제 몸을 깃들이는 데는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는 당나라 은자 한산의 시에서 빌린 것으로 소박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초의가 차를 접하게 된 것은 정약용 덕분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돼 왔을 때, 선지식을 찾아 헤매던 초의는 다산을 만나 학문뿐 아니라 차에 깊이 빠져들었다. 다산의 떡차 제조법도 초의에게 전수되었다.
초의는 추사 김정희와도 오랫동안 교류했다. 동갑내기였던 그들은 신분과 학문의 경계를 초월해 40여년 동안 돈독한 관계였다. 그 중심에도 차가 있었다. 추사는 초의에게 거의 보채듯이 차를 보내달라고 수시로 채근했다. 적적해하는 추사를 위해 초의는 제주도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초의에 대한 깊은 정을 표현한 작품이 추사의 ‘명선(茗禪)’이다.
초의가 쓴 ‘동다송’은 중국차가 아니라,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상찬이다. 조선 차의 역사와 음용 방법 등을 두루 서술한 장편 시다. 내용 중에 “촘촘한 잎 눈(雪)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흰 꽃은 서리 씻겨 가을 떨기 피우누나”(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라는 구절이 있다. 차나무는 가을에 피는 흰 꽃과 노란색 수술로 온유한 성질을 드러내면서도, 참새 혓바닥 같은 어린잎을 내밀기 위해 한겨울 눈보라와 싸우는 근기도 보여준다.
남도나 제주도로 답사를 가면 다원에 자주 들렀다. 녹차뿐 아니라 녹차밭 자체가 땅에 밀착된 하나의 멋진 문화경관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남과 제주 등지의 녹차밭이 번성하게 된 것은 차로 인연을 맺은 초의와 다산, 그리고 추사 덕분이 아닐까.
“늙음 떨쳐 젊어지는 신통한 효험 빨라, 팔십 먹은 노인 얼굴 복사꽃인 듯 붉네.” ‘동다송’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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