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음식으로 일본 사회를 풍자한 고전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오래된 일본 영화를, 그것도 4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상영을 하다니, 놀랍다는 생각에 개봉일에 맞춰 계획관람을 했다.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영화관에는 평일임에도 객석이 제법 차 있었다. 아무래도 〈담뽀뽀〉가 음식 영화의 원형임을 아는 마니아 층일 것이다.
〈담뽀뽀〉(1985)는 영화 탄생 4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아날로그 원본을 디지털로 전환해 해상도와 음질을 개선하는 작업) 버전으로 국내에 선을 보였다.
첫 신에 하얀 양복, 하얀 중절모, 하얀 구두를 차려입은 망나니 같은 재벌2세 아니면 젊은 야쿠자 두목으로 보이는 신사(배우 야쿠쇼 코지)가 옆구리에 콜걸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를 끼고 영화관으로 들어선다. 그가 들어서자 부하들이 부산하다. 신사는 접대에 익숙한 듯 여성과 함께 영화관 앞줄에 앉더니 갑자기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관객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그쪽도 영화 보러 왔나? 뭐 먹고 있나? 영화 시작하고 소리 내면 죽을 줄 알아. 알람 시계 소리도 거슬려."
두 번째 신이다. 노인이 젊은 청년 건(배우 와타나베 켄)에게 라멘 먹는 법을 다도처럼 엄숙하게 가르치는 에피소드다. 노인은 "먹기 전에 국물과 면을 지긋이 바라보며 음미해야 하며, 인사하듯 젓가락으로 면을 살짝 흔들고, 이후 국물을 한 모금만 먼저 마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규율과 절차, 먹는 과정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일본 문화의 단면을 풍자한 대목이다.
이 내용을 주고 받던 트럭 기사 고로(배우 야마자키 츠토무)와 조수 건. 먹는 얘길 하다보면 식욕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을 터라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빗길을 뚫고 근방의 라멘집으로 들어간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가 마을의 선술집에 들어서는 모양새다. 서부영화에서 이방인이 들어서면 박힌 돌들은 굴러온 돌에게 시비를 걸고 총격을 가하듯, 자리잡고 있던 마을의 건달 피스켄(배우 야스오라 리키야) 일당이 시비를 걸고 고로는 5대1의 싸움을 치르더니 만화처럼 이긴다.
결국 의식을 잃었다가 라멘집 주인이자 미망인 담뽀뽀('민들레'라는 뜻; 배우 미야모토 노부코)의 보살핌으로 깨어난 고로는 고마움에 대한 표시인 듯 라멘집의 운영비책 몇마디를 건넨다. 이에 정신을 바짝 차린 담뽀뽀는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라멘집 운영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다. 이로써 유명 라멘집 탐방, 거리의 달인 요리사들은 물론 건달 피스켄까지 담뽀뽀가 진정한 라멘 장인이 될 수 있게끔 험난한 훈련과정이 전개되고 힘이 되어준다.
영화 〈담뽀뽀〉는 음식 영화의 고전 격이다. 먹방이 대세이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에서 푸드 무비를 의도하지는 않았을 터. 그래서인지 미국 서부활극 같은 요소를 담았다. 서부극의 빌런들을 야쿠자에 대입시키는가 하면, 80년대 경제적 호황을 누렸던 당시의 일본에서 황색 저널리즘(3S: Sensationalism, Sports, Sex)이 범람하던 면모도 가감 없이 들어 있다. '라멘'이라는 음식만을 중심으로 다루지 않았던 점을 두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하기에는 현대적 감성에 어울리지 않는 번잡하고 올드한 느낌이다.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의 형식을 빌렸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함께 녹여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먹는 법을 강의하다 먹는 법 자체가 부질없음을 내보이는 에피소드, 회사원들이 가장 높은 사람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직적 조직문화와 권위주의를 신랄하게 째려본 감독의 시선이 읽힌다.
가장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집에서 중병으로 죽어가는 주부를 그린 대목이다. 의사는 "살 가망이 없다"고 선언하자, 아이들은 울고 남편은 아내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치지만 여자는 일어나지 못한다. 남편이 다시 "어서 일어나 밥을 하라.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자 여자는 일어나 비틀비틀 부엌으로 가 좀비처럼 칼질을 하고 밥을 볶아 상을 차리더니 눈을 감는다. 당시 일본인의 식문화 단면이겠지만, 일본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시선(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이 하도 어이없어 충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