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안단테 안단테

관리자 2025. 12.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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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질이 급하다. 너무 빠르게 말해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마감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급히 밥을 먹어 수시로 체한다.

차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 문을 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문닫힘 버튼을 누른다. 수다쟁이인 편이지만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용건만 말하고 끊는다. 한 어르신에게 “제발 ‘이제 끊겠습니다’란 말 좀 하고 끊어요. 인경씨가 갑자기 뚝 끊은지도 모르고 나 혼자 중얼거릴 때 얼마나 민망한지 알아요?”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국인은 ‘빨리 빨리’를 외쳐 세계가 놀란 고속성장을 했지만 나의 성급함은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해를 받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 내가 저지른 과오나 실수는 대부분 빨리 결정하고 섣부르게 행동으로 옮긴 탓이다. 면밀한 관찰과 사유를 하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고 사건을 해석했다. 먼저 버튼을 누르면 답할 기회를 주는 퀴즈게임에 참가한 사람처럼 나는 초조했고, 보는 이들조차 숨 가쁘게 만들었다. 뜸 들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늘 설익은 밥 같은 결과를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결혼도 선본 지 두달 만에 했는데 아직도 남편의 실체를 모르겠고 40년째 후회 중이다.

고속도로에서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란 현수막을 봤는데 나이가 드니 그 현수막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빨리’와 재빨리 작별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2026년 나의 목표는 내 삶의 속도와 자세를 ‘안단테(andante)’로 바꾸는 것이다.

안단테는 악보에서 느리게, 여유롭고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단어다. 모데라토와 아다지오의 중간 속도다. 축축 늘어지는 속도가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연주하는 것이다.

세계적 혼성그룹 ‘아바’의 노래 ‘안단테 안단테’에서도 ‘여름 저녁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살며시 나를 어루만져줘요’란 가사가 나온다. 과거의 나는 겨울에 부는 찬바람처럼, 때론 폭우처럼 매섭게 성급하게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이젠 매 순간을 찬찬히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알아차리지 못했던 가치, 은은하게 온 마음과 마음에 퍼지는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내 인생을 부드럽게 껴안아주며 살아가야겠다.

어쩌면 젊은 시절, 나의 성급함은 내게 닥친 시련들과 내 앞에 놓인 걱정들을 피해 빨리 달려 탈출하고 싶었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외면하고 벗어나기보다 현실과 마주해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훅 올라오는 분노의 마음도 심호흡으로 살짝 눌러주면 정작 화낼 일이 아니었음도 안다.

고속열차를 타고 가며 스쳐가는 그림으로 보던 풍경들을 이젠 산책하듯 한걸음 한걸음 찬찬히 내 앞에 펼쳐진 순간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부드럽게 안아주며 살아가고 싶다. 느긋하게 걸어가면 1년도 10년처럼 여유롭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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