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농민·농업·농촌·농정의 공생인 ‘농학운동’

요즘 부쩍 동학(東學) 얘기가 많이 나온다. 기후위기와 팬데믹과 전쟁, 게다가 생명 경시에 자본주의 폐해까지, 그 대안으로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과 삼경(三敬)의 동학사상이 드디어 물을 만난 것일까? 이런 동학사상이 인간·비인간, 물질·비물질의 평등을 주창해 요즘 잘 나가는 서양의 ‘신유물론’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 때문에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중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대담한 전환이 필요하고, 그 전환의 사상으로 동학이 제격이어서 그럴까?
그런데 뜬금없이 동학운동도 아니고 농학운동은 대체 무엇인가? 동학(농민)운동이나 그냥 농민운동이라는 말은 있어도 ‘농학운동’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새로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농민운동과 농학운동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 농민운동은 삶의 터전인 땅을 지켜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농민들의 저항방식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농민운동은 조선 후기 농민운동부터 19세기말 동학농민운동, 일제강점기 농민운동, 그리고 근현대의 농민운동을 거치면서 관과 토호의 수탈을 수동적으로 막아내는 것을 넘어, 그 수탈과 핍박의 주체를 적극적으로 바꿔내는 식으로 진화해왔다.
이런 농민운동과 동학운동에 바탕해 농학운동을 주창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시대와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제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수탈과 소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생존의 기로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로 ‘농(農)’이 그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다중 위기에 처해 있는 지구와 인류를 구하자는 운동이 바로 농학운동이다. 아스팔트 문명으로부터 농토를 지키고 기후와 지구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온 농민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 생태학과 동학의 3경사상, 라투르의 신유물론을 바탕으로 농학운동의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도시와 농촌 사이의 ‘물질대사 균열’로 말미암은 생태계 파괴를 얘기했고, 최시형은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을 설파해 그 당시에 이미 완벽한 생명사상을 만들었다. 또한 라투르는 탈인간중심적 문명화의 길을 제시해 생태문명의 기반을 놓았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동학운동의 연장선상으로 농학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학운동을 내가 주창하지만 그 뿌리는 전적으로 동학농민운동이다. 이 절박한 총체적 위기 앞에서 우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 자체다. 지구환경을 지키고 인간은 물론 비인간과의 평등을 추구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사농공상(四農共相)으로 바꾸는 것이 농학운동의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四農(농민·농업·농촌·농정)의 상호 유기적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 이런 전 지구적 위기 시대에는 농본주의가 답이다. 농즉천(農卽天)이고, 농내천(農乃天)이고, 시농주(侍農主)이고, 양농주(養農主)이고, 원시반농(原始返農)이다. 돌고 돌아 다시 근본인 ‘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농이 생명이고 평화이며, 구원이고 해방이다.
그러나 농학운동의 주체가 돼야 할 농민은 오늘날 ‘불가촉천민’의 처지에 놓여 있다. 농업과 농촌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농정은 제 갈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이것들의 정상화야말로 농학운동의 시작이다. 농학운동이 동학운동이고, 동학운동이 농학운동이다. 농자가 천하의 근본이 되는 것, 그것이 곧 농학운동이다.
장원 농촌유토피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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