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나에게 내는 상처가 깊을수록…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 시인 2025. 12. 2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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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로제타석이라는 게 무슨 돌인지 알아보자.

1799년 이집트에 원정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한 병사가 나일강 하류의 로제타강 하구에서 글자가 잔뜩 적혀 있는 큰 돌을 발견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다.

불에 달군 칼끝으로 내 몸을 어떻게 하든 나 로제타석은 쓸쓸한 돌밭이나 강어귀, 절벽 아래, 눅눅한 시장통, 공동묘지 등 어디에 버려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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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토요일 詩 한편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강기원 시인의 ‘로제타석’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돌에 새기는 수천년

로제타석

나는 입술이 없습니다
고막이 없습니다
눈동자도 없습니다
가진 거라곤
벌거벗은 가슴
뿐입니다
희지도 않습니다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번뇌의 가슴, 이래도 좋으시다면
제 위에
당신의 비밀을 적으십시오
불에 달군 칼끝으로
한 자 한 자 새기십시오
해면 같은 가슴 속에서
피는 흐르지 않고
점점이 고입니다
어둠 속에 하나둘 별이 돋듯
돋을새김의 상형문자
끝없는 당신의 긴 문장이 끝난 후
함부로 버려주십시오
쓸쓸한 돌밭이나 강어귀, 절벽 아래, 눅눅한 시장통, 공동묘지……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간곡히 새겨지는
비문(祕文), 비문(非文) 그리고 아름다운 비문(悲文)
발굴되지 않을, 되어도
해독되지 않을
당신의 로제타석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만나, 눈부시게 캄캄한 정오에」, 달아실 , 2023년

우선 로제타석이라는 게 무슨 돌인지 알아보자. 1799년 이집트에 원정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한 병사가 나일강 하류의 로제타강 하구에서 글자가 잔뜩 적혀 있는 큰 돌을 발견했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높이 121.86㎝, 너비 75㎝, 두께 27.94㎝나 되는 꽤 큰 돌이었다. 기원전 4세기께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있고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모조품이 전시돼 있다.

돌 표면에는 상형문자와 데모틱어(Demoticㆍ고대 이집트어), 그리스어의 3종 언어로 된 비문에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이야기하는 멤피스 승려들의 송사頌辭가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는 샹폴리옹이란 언어학자가 해독했고, 그의 비문 해독은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됐다.

[사진 | 달아실 제공]

이 시의 화자는 로제타석이다. 아니, 로제타석으로 분扮한 사람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호소한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랑만 해주면 나는 분골쇄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성性이 밝혀져 있지 않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일 뿐이다. 불에 달군 칼끝으로 내 몸을 어떻게 하든 나 로제타석은 쓸쓸한 돌밭이나 강어귀, 절벽 아래, 눅눅한 시장통, 공동묘지 등 어디에 버려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아아, 어찌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이런 사랑이 다 있을까. 그대가 나에게 내는 상처가 깊을수록 내 몸에 '간곡히' 새겨지는 것은 비문祕文과 비문非文, 그리고 아름다운 비문悲文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21세기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런 미친 사랑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었다. '베티블루' '색ㆍ계' '퐁네프의 연인들' 등 영화 속의 인물들. 영화니까 가능한 사랑이지 현실세계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아아, 그런데 이런 사랑이 내게 찾아온다면?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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