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나쁜 일자리는 없다, ‘기초 일자리’라고 부르자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2025. 12. 1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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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주변부·불안정…
이런 말에 자부심 잃고
‘나쁜 노동’ 낙인찍힌다
대한민국 기초 노동은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다
인식 전환과 처우 개선을
서울 한 구두공장에서 60대 근로자가 작업하는 모습.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나쁜 일자리'라는 용어는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해한다며, 그것 대신 '기초 일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했다. /장련성 기자

“우리랑 함께하고 우리를 대변하는 것은 고마워요. 그렇지만 우리를 얘기할 때 ‘하위’ ‘주변부’ ‘불안정’ 그런 말 안 쓰면 안 되나요? 우리가 힘들게 일하는 것은 맞아요. 그래도 우리 일에 자부심 있고, 우리끼리 술 마시면 즐겁고 행복하다고요. 그런데 세상에서 자꾸 우리를 안 좋은 노동으로 낙인찍으니까 괜히 못난 인간 같고 자존심도 상한다고요.”

나에게 하는 볼멘소리였다. 발언자는 열일곱 살부터 38년째 봉제 노동을 하며, 같은 직종의 아내를 만나 딸과 아들을 어엿하게 성장시키고, 자식 얘기만 나오면 자부심과 행복감으로 충만한 노동자였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맞다, 맞아” 맞장구쳤다. 몇 년 전, 봉제 공장이 밀집한 종로구 창신동의 한 식당에서였다.

시간제·기간제·파견직·용역·특수고용 등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그 노동의 당사자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으로 지칭되는 것을 불편해했다. 나는 그 사실을 노동운동 현장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표현을 달고 살았다.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안정적인 상층 정규직 노동과 비교해야 해서였다. 그 표현은 가치 중립적인 학문적·사회적 개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그 개념은 좋고 나쁨의 평가 기준으로 작동했다. 당사자는 자존감에 상처받았고, 다수 청년은 그 노동을 기피했다. 내가 거기에 일조한 것이었다. 그들의 성화에 “알았어, 알았어” 대답한 뒤에 나는 터져 나오는 묵직한 한숨을 소주에 털어 넣었다.

어떤 개념을 써야 당사자들이 덜 불편해할까. 국어사전을 뒤지며 주변과 상의했다. ‘기초 일자리’ ‘기초 노동’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볼멘소리한 당사자에게 물었다. 자신의 노동을 빛내지는 못하지만, 자존심 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럼 됐다 싶었다. 앞으로도 당사자가 꺼리는 표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있을 텐데, 최소화할 것이다. 일상에서는, 특히 그들 앞에서는 ‘기초 일자리’ ‘기초 노동’을 쓰려고 한다.

한국에서 좋은(양질의)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로 번역되는 ‘decent work’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였다. 당시 사무총장 후안 소마비아는 ILO의 우선순위로 decent work를 제시했다. 영어 decent는 괜찮은, 적정한, 좋은, 알맞은 등의 뜻이다. 괜찮은 일자리로 번역하고 통일해 사용하면 어땠을까 싶다. 그 표현이면 기초 일자리에 대한 부정적 대비 효과를 줄이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good jobs으로 인식되는 ‘좋은(양질의) 일자리’ 표현이 대세가 됐다. 그 표현은 골목과 가정까지 파고들었고, 기초 일자리를 ‘bad jobs(나쁜 일자리)’으로 낙인찍는 부정적 효과를 확산시켰다.

현대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며 삼성·LG·현대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필립 코틀러 교수는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거대한 다국적 기업과 금융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자본주의를 기업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1인 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 5~10명으로 구성된 중소기업이 선진국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도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초 일자리는 높은 기업 경쟁력, 풍부한 지불 능력 등을 기대할 수 없다. 고임금과 고용 안정도 기대할 수 없다. 노동법조차 비껴간다. 그렇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시대의 대한민국 기초 노동’은 자가용을 굴리고, 가족 외식을 하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먹고 마시며 음식 쓰레기를 남길 만큼의 ‘비교적 여유 있는’ 일자리다. 기초 일자리의 청년은 친구와 어울려 맛집을 투어하고 해외여행도 할 수 있다. 청년이 꿈을 키울 수 있는 일자리다.

비록 소득은 낮고 복지는 취약하고 고용은 불안정하지만, 기초 일자리 노동은 저마다 가치가 있고, 자부심이 있고, 꿈이 있는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다. 기초 일자리는 피해야 할 나쁜 일자리가 아니다. 그 점을 사회화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기초 일자리의 환경과 기초노동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이중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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