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숑 프리제 '이시봉' 향한 인간의 사랑은 얼마나 일방적인가

2025. 12. 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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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시봉의 보호자 이시습은 20대 청년으로, 고등학교는 자퇴했으며, 아직 뚜렷한 삶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던 중 이시봉이 일반적인 반려견이 아니라, 특별한 혈통을 지닌 비숑 프리제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습은 이시봉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과연 이시봉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는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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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비숑 프리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기호 작가의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이시봉이라는 반려견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다 말고 으레 반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렇듯, 슬픈 결말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어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이미 읽은 동료 작가에게 결말을 스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돌아온 메시지.

-1도 안 슬퍼.

작가의 언어는 역시 다르다. 나는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다.

이시봉은 작가가 초기작부터 인물들에게 붙여온 이름이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의 주인공도 이시봉. 무려 비숑 프리제. 이시봉의 보호자 이시습은 20대 청년으로, 고등학교는 자퇴했으며, 아직 뚜렷한 삶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시습의 아버지는 사고로 사망했는데 반려견 이시봉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이후 가족들은 함께 생활을 이어가지만, 이시봉을 둘러싼 감정은 가족 구성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어머니는 이시봉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나, 정서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이시봉이 일반적인 반려견이 아니라, 특별한 혈통을 지닌 비숑 프리제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반려견과 그 혈통을 둘러싼 일종의 모험담인 셈인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성장 서사나 성취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이시습은 어딘가로 나아가지 않고, 이시봉 역시 위대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상황은 번번이 어긋난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이기호 지음·문학동네 발행·528쪽·1만9,800원

이 과정에서 이 소설이 반복해서 건드리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일방적인가 하는 문제다. 시습은 이시봉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과연 이시봉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는지는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이시봉의 입장을 상상하고, 이시봉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선택들, 애정이라는 말로 포장된 결정들이 정말 이시봉을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태도는 이 소설을 단순한 동물에 대한 서사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이상할 만큼 경쾌하다. 작가는 실패와 좌절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교훈으로 봉합하지도 않는다. 특별한 혈통이라는 설정조차 결국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대의 목록에 가깝고, 이시봉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쪽에도, 완전히 배반하는 쪽에도 서지 않는다. 그저 끝까지 이시봉일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반려견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되지 않는-않아도 되는 존재들에 대한,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를 계속 증명하려 하지만 실패하는, 제대로 살아내 보려 하지만 '제대로'가 무엇인지를 묻는 태도. 이기호 소설 특유의 명랑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1도 안 슬프다'는 말은 그래서 정확하다. 슬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슬픔을 굳이 확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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