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굽이굽이 흐른 세월의 끝에서 차곡차곡 염원은 탑이 되었다


사람은 힘든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은 더 좋게 기억하려고 한다. 내 기억 속 현등사 가는 길은 오르기 힘들지 않았다. 지금부터 이십여 년 전 한 단체의 주관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현등사에 올랐을 때였다.
"얼마나 더 가야해요?"
"조금만 더 가시면 나와요."
현등사로 가는 내내 같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속는 셈 치고 주고받은 '조금만'은 산길을 오르게 만든 사소하지만 희망섞인 말이었다. 오랜 만에 현등사를 가기로 했을 때 그 길이 기억과 같을지 궁금했다.
현등사 입구 주차장에서 현등사가 있는 운악산이 한눈에 보인다. 바위로 뒤덮인 산들이 공룡의 등에 난 돌기처럼 늘어선 걸 보면 작은 금강산이라는 별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저 산 중턱에 어딘가에 있을 현등사를 상상하자니 출발하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길을 오른다. 절까지는 찻길이 놓였어도 입구에서 차를 통제해 특별한 경우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자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기억과 달리 평탄한 길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하지?"라는 질문을 내가 내게 한다.

하늘은 파랗고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출렁다리가 나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무엇이 보일지 궁금해 출렁다리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산에서는 조금만 올라가도 풍경이 달라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예상하지 못한 운악산의 장쾌한 풍경에 놀란다. 사람들이 운악산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

바람 소리에 땀을 씻고 시원한 폭포 풍경에 숨을 고르는 사이 불이문에 도착한다. 현등사가 코앞이다. 다리에 마지막 힘을 주며 108계단을 오르자 지진탑이 나온다. 현등사에서 만나는 두 탑 가운데 하나다. 고려 시대 이곳의 기운을 진정시키려고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사연 많은 현등사의 역사를 증명하듯 탑은 제 모습을 많이 잃었다.
현등사의 역사는 폐허와 중창의 연속이었다. 사찰이 폐허가 됐을 때마다 기라성 같은 스님들이 이곳에 와 절을 일으켰다. 삼국시대 인도 승려 마라가미가 창건한 이후 통일신라의 도선국사, 고려 시대의 보조국사 지눌, 조선 시대의 함허당 득통과 혜각존자 신미가 현등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새 시대를 열었고 불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당당히 일어났다. 현대에 들어와서 중창을 거듭해 현재에 이른다.
의연한 지진탑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현등사 경내가 펼쳐진다. 산자락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절은 전반적으로 길쭉하다. 절 뒤로 운악산 봉우리들이 불교의 수호신장처럼 늘어섰다. 강렬한 산의 기운이 현등사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다.

탑 뒤에 또 탑이라니! 경내에서 제일 먼저 사람을 맞아주는 건 현등사 삼층석탑이다. 현등사라는 배를 이끌고 큰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처럼 당당하다. 고려 시대 혹은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탑에서 나온 사리기에는 영응대군(세종대왕의 아들)의 딸이 아버지를 위해 탑을 고쳐지었다고 기록됐다. 알고보니 이곳은 왕실과 관련이 깊은 절이었다. 삼층석탑 앞은 막힘이 없어 시야가 시원하다.

탑을 둘러보는 사이 하얀 개 두 마리가 컹컹거리며 달려온다. 긴장도 잠시 개들은 낯선 방문객을 검문하듯 훑어보더니 다시 절 마당으로 뛰어간다. '저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얼마나 멋질까!'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걸음한 곳이 보광전이다. 보광전은 1980년대에 다시 지은 건물로 양쪽이 튀어나온 'ㄷ'자 모양이다. 보광전 앞 계단에 오르자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뛰어난 고승들이 이 풍경을 벗하며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됐다고 상상하니 현등사와 운악산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현등사의 중심 건물은 극락전이다. 극락전 안에는 서방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인 아미타불이 봉안됐다. 건물과 불상은 조선 영조 때 만들어졌다. 극락전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옛날 걸어걸어 산을 올라와 부처 앞에서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숙연해진다. 몇년 전 해체복원을 끝내서인지 내부가 정갈하다.
극락전 앞마당에는 뜬금없이 동그란 돌이 놓였다. 다른 절이었다면 석등이나 탑이 놓일 자리다. 지나치기 쉬운 이 돌을 소원대라고 부른다. 그 옛날 등이 걸렸던 자리라고 전하는데, 이 돌 위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면 현등사는 소원과 관련이 깊다. 극락전 오른쪽의 아름드리 기둥도 영험해 이 기둥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절 현등사! 현등사에는 소원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영조 때 현등사에서 3년을 공부한 성씨 총각이 과거에 합격했다. 절에 있는 동안 성씨 총각 집안은 절을 중수했고 성씨 총각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렸다. 나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현등사에 '대선급제사(大選及第寺)'라는 편액을 내려줬다고 한다. 조선 시대 양반에게 과거는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는 일종의 숙명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성씨 총각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극락전 뒤로 삼성각과 지장전이 이어진다. 올해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 대단했다. 영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저승사자와 헌터를 이어주는 메신저였다. 삼성각에 걸린 산신도 속 호랑이에 눈길이 오래 머문 건 아무래도 케데헌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이라도 호랑이는 빙그레 웃으며 산신의 메시지를 전하러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인다.

석가모니를 모신 영산보전과 약사부처를 모신 만월보전을 둘러보고 적멸보궁으로 오른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건물로 경내 뒤쪽 언덕에 자리 잡았다.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적멸보궁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을 볼 수 있도록 유리창을 달았고 따로 불상은 봉안하지 않았다. 위쪽 언덕의 탑 안에는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에서 기증받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봉안했다.
적멸보궁 앞으로 현등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세상은 멀고 산바람은 쉼 없이 불어온다. 현등사 일주문부터 서둘러 걸어왔던 길이 먼 과거처럼 아득하다. 잠시 눈을 감고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숨을 들이쉬는 순간 평화로운 기운이 몸을 감싼다. 적멸보궁이 이곳에 있는 까닭에 뜻밖의 즐거움을 누린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현등사의 등불은 지금까지도 운악산을,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춘다. 절을 지키는 개의 배웅을 받으며 다음 행선지인 아침고요수목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평의 유명한 관광지는 여럿으로, 그 가운데 아침고요수목원을 빼놓을 수 없다. 현등사에서 청평 방향으로 가는 길에 수목원이 자리 잡았다. 수목원의 이름이 독특한데 예전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설립자인 한상경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담은 식물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수목원은 1996년 문을 열었고 지금은 20여 개의 정원과 4곳의 실내 전시시설이 있으며 약 5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겨울 수목원의 해는 짧다. 수목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산으로 넘어가기 전이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 수목원을 둘러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간다. 아기자기한 정원을 보며 그동안 어떤 정성을 기울였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특히 수목원 끝에 자리 잡은 한국정원은 정자와 연못과 나무가 잘 어우러져 산수화처럼 보인다. 너른 수목원을 둘러보는 사이 해가 완전히 넘어간다.

밤이 되자 수목원이 변신을 한다. 수목원에 오색 전구가 켜지면서 '오색별빛정원전'이 시작된다(2026년 3월 15일까지). 어둠이 깊을수록 수목원은 더욱 빛난다. 수목원 입구에 놓인 빛의 터널로부터 시작해 수목원 곳곳이 빛으로 물든다. 대표 정원인 하경정원에서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침광장은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드넓은 바다가 됐고 달빛 정원의 하늘에는 보름달 같은 등불이 둥둥 떠 있다. 수목원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예쁘다!" 신비로운 별빛정원을 걷는 동안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은 동화의 주인공이 된다.

현등사에는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이 빛나고 아침고요수목원에는 즐거움을 주는 등불이 반짝거린다. 가평의 하늘에는 두 등불이 두둥실 떠있다. 이 장면은 훗날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